신재철 한국IBM 사장이 리눅스 산업 활성화의 선봉장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지난달 하순 진대제 삼성전자 미디어부문 총괄 사장에 이어 한국리눅스협의회장으로 공식 취임하면서 한국 리눅스 산업의 진흥을 기치로 내걸고 리눅스 진영의 최전선에 과감하게 뛰어든 것이다.
신재철 신임 회장의 리눅스 진영 합류는 IBM의 리눅스 사업 전략과 맞물려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작년 하반기들어 동력이 다소 떨어진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는 리눅스 업계가 재차 성장의 고삐를 틀어잡는 데 활력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이같은 리눅스 업계의 기대는 세계 최대의 컴퓨터 업체임을 자랑하는 IBM이 리눅스 분야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겠다고 칼을 뽑아든 이상 결코 싱겁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업계의 신뢰감이 반영돼 있다.
과연 신 회장은 이러한 업계의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켜 줄 수 있을까. 신 회장은 우선 리눅스협의회가 회원사들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기관이 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항간의 우려를 일축했다.
『리눅스는 일반적인 IT분야와는 달리 공동체 문화라는 독특한 문화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단순히 업계의 이익만을 도모할 경우 공동체로부터 비난이 쏟아질 것이고 그렇다고 이상만 추구하다 보면 리눅스 시장의 전체적인 파이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리눅스 분야의 수익 모델을 모색중인 리눅스 업체, 리눅스 마니아들이 주도하는 리눅스 공동체, 리눅스를 연구하는 학계 및 연구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전체 리눅스 시장의 파이를 키울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협의회는 앞으로 업계·학계·공동체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 설 계획입니다. 특히 리눅스 동호회나 커뮤니티, 대화 채널을 본격 가동하고 기술적인 관심사에 관해서도 업계와 상호 협의할 수 있도록 협의회를 운영할 생각입니다.』
신 회장은 리눅스 시장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선 그동안 웹이나 기술분야에 한정됐던 리눅스의 관심 영역을 비즈니스 영역으로 대폭 확장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리눅스 업계가 처해 있는 문제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게 신 회장의 생각이다. 『리눅스 분야는 아직 사용자들이 쓸 만한 애플리케이션이 많이 보급돼 있지 않고 리눅스 프로그램에 정통한 개발자나 시스템 엔지니어들도 턱없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또한 리눅스 사용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사후 지원 체계도 미흡한 편입니다.』
신 회장은 이같은 리눅스 분야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해결하는 데 협의회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 회장은 리눅스의 미래를 비교적 낙관하고 있다. 『협의회가 작년에 국내 1067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서버 시장의 16%를 리눅스 분야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데스크톱의 시장 점유율이 고작 1.6%에 불과하지만 서버 시장에선 이미 상당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요. 굳이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의 자료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같은 시장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리눅스협의회가 작년에 조사 분석한 국내 리눅스 산업현황 자료는 신 회장의 이같은 믿음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협의회측 자료에 따르면 리눅스 비즈니스의 원년이라고 할 수 있는 지난 99년 국내 리눅스분야 전체 매출이 50억원을 밑돌았지만 작년에는 1720억원으로 무려 20배 가까운 매출 신장세를 기록했다. 업계 종사자 수도 지난 99년의 652명에서 작년에는 1759명으로 급증했다. 그만큼 리눅스 시장이 커졌다는 반증이다.
사실 리눅스는 정부 차원에서도 보급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분야 중 하나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운용체계(OS)나 유닉스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선 총소유비용(TCO)이 적고 로열티 부담이 없는 리눅스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같은 이유로 리눅스 육성정책을 놓고 경쟁업체에선 왈가왈부 말이 많다.
특정 운용체계를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게 경쟁 업체들의 반박논리다.
이같은 경쟁업체들의 논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해 신 회장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신 회장은 이같은 물음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다만 리눅스가 갖고 있는 개방성과 경제성 때문에 시장 논리만 놓고 보더라도 리눅스가 다른 운용체계에 비해 경쟁력이 뒤질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신 회장은 『
국내 리눅스업체들이 통신·가전·PDA·산업용 장비 등 임베디드 시스템에 리눅스가 적극 채택하고 있는 실정임을 감안할 때 임베디드 분야의 리눅스 시장 전망이 매우 밝다』며 특히 이 분야는 국내 리눅스 업체들이 강점을 갖고 있어 국제 무대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내다봤다.
여기다 리눅스는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나 경기하강 국면에 오히려 상대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신 회장은 리눅스 옹호론을 펼쳤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국가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던 IMF 구제금융시절에 리눅스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며 리눅스에 남다른 기대감을 내비쳤다.
신 회장은 리눅스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의 산업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선 리눅스 업체들이 종전의 웹서버나 단순히 하드웨어를 판매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IT비즈니스 영역에 활발하게 진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동안 국내 리눅스 산업은 인터넷 기반의 소규모 기업이나 닷컴 기업을 중심으로 수요가 형성됐는데 올해부터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미들웨어 등 모든 분야의 통합 솔루션을 제공해 비즈니스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 회장은 특히 고객 중심의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리눅스의 경우 다른 운용체계와 달리 특정 업체가 솔루션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철저한 사후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고객들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며 철저한 사후 서비스 지원 체제의 확립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킬러 애플리케이션의 개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후지원 체제라는 것이다.
신 회장이 사후지원 체제를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는 그가 IBM에 근무하면서 통신·상하수도·전력·가스 등 고객관리 업무의 중요성이 높은 유틸리티 분야에 오랫동안 관여해 왔던 배경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고객 마인드를 유달리 강조하는 신 회장이 리눅스업계에 어떠한 바람을 몰고 올지 주목된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
<주요 약력>
◇학력 △70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90년 서울대 최고 경영자 과정 수료 △91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경영자 과정 수료 △94년 미국 하버드대학 경영자 과정 수료
◇경력 △69년 동해전력 개발 입사 △73년 한국IBM 영업부 입사 △82년 제조유통기관 지사장 △84년 미국 IBM 파견 근무 △90년 경영관리본부 전무 △95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에너지 서비스산업 총괄 본부장 △96년 11월 한국IBM 대표이사
◇기타 경력 △99년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선임 △99년 2월 한국정보산업연합회 부회장 선임 △99년 3월 한국 SCM 민관 합동추진위원회 위원 선임 △2001년 2월 한국리눅스협의회 회장 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