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실리 브라운·폴 두기드 지음, 이진우 옮김, 거름 刊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괴이한 인물이 등장한다. 지나가는 여행자를 잡아다 침대에 뉘어 놓고 침대 길이에 맞게 키가 작은 사람은 목을 늘리고 키가 큰 사람은 다리를 잘라 낸다.
우리가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 정보화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억지스럽고 의심스러운 데가 없지 않다는 데서 이 책은 시작한다.
「정보의 시대에 사는 일은 때때로 마치 누군가에게 이끌려 어두운 터널 속을 자동차로 통과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주변의 사물들은 보이지 않고 단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만이 보일 뿐이다. 그 자동차에 타고 있는 운전자가 보지 못하는 주변 상황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보행자의 발꿈치를 간신히 비켜 가기도 하고 벽이나 기둥을 긁기도 하며, 때론 정말 위험천만한 위기 상황을 가까스로 비켜 가면서 불안한 곡예를 계속하는 것이다.(비트에서 인간으로 머리말 중에서)」
저자들은 오늘날 정보사회를 어둔운 터널에 비유한다. 그 속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후예들인 「서툰 목수들」은 어설픈 못짓으로 정보의 틀에 끼워 맞추기 작업에 여념이 없다. 모든 사물과 현상을 정보화의 비트에 꿰 맞추다보면 프로크루스테스처럼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저자들은 오로지 앞으로만 질주하려는 정보화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어둠에 가려진 「정보의 주변」을 돌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정보의 어두운 주변에는 다름 아닌 인간과 인간들의 사회적 관계, 조직, 배경, 역사 등이 있다. 비트의 날카로운 칼날에 잘리워진 이 요소들은 결코 무시해도 좋은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균형 감각과 통찰력을 불어 넣어주고 선택적 대안을 제시하며 한발짝 물러나 목표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 주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저자들은 정보화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 지금까지 원자에서 비트로 가는 길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비트에서 인간으로 가는 길을 생각해야 할 때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특히 저자들은 비트에서 인간으로 가는 길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원칙으로 「프로세스」와 「프랙티스」의 조화를 역설한다. 프랙티스란 프로세스의 내부적인 상호작용인 실제 작업 단계의 업무 방식을 말한다. 쉽게 말해 업무 수행의 모든 과정에서 얻어지는 노하우를 가리킨다. 프로세서는 조직 전체의 통일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프로세서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은 그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 각각의 프랙티스다. 따라서 기업이 조직의 운영을 위해 더욱 신경써야 하는 부분은 프로세스가 아니라 프랙티스다. 이러한 프랙티스는 구성원간의 인간적 상호작용과 경험의 공유를 통해서만 전달된다. 디지털이나 비트화될 수 없는 이 부문을 간과한다면 기업은 효율성을 잃고 손실을 입게 될 것이란 주장이다.
저자인 존 실리 브라운은 제록스의 수석 연구원이자 팰러앨토리서치(PARC)의 원장으로 인간의 지식 습득 프로세스와 경영 혁신 분야에 대한 전문가다. 공동 저자인 폴 두기드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과 PARC에서 역사학·사회학을 연구하고 있다. 역자 이진우 씨는 서울경제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정보통신 분야의 웹진인 「코리아 씨넷」에 재직중이다.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