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저작권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08년 일제 총독부 시절이었다. 일제는 명치 칙령 200호를 통해 그해 8월 모든 저작물의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겠다는 저작권령을 공포한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저작권」이 법제화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한세기가 다가도록 우리 저작권법이 일제의 그것과 그대로 닮아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일본 저작권법을 모태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일제시대 처음 마련된 저작권법은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대적인 수술을 받게 된다.
1957년 개정 수준을 넘어 새로운 제정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대폭 개정된 저작권법이 선보였고 일각에서는 이를 대한민국 저작권법의 시초로 보기도 한다.
국내에서 저작권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도, 관련 인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57년 저작권법 개정에 참여한 국민대 정광현 교수와 홍익대 이학령 교수는 저작권계의 1세대로 꼽힌다.
이들 1세대는 대부분 민법이나 법철학 등을 전공하면서 저작권 분야로 영역을 넓혀 학문적 기초를 닦고 저작권법에 대한 제정비에 평생을 바쳤다. 또 대학에 저작권 강좌를 개설하고 관련 개론서도 집필하는 등 후학 양성을 위한 기반 마련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지금은 대부분 작고했다.
1세대들의 고군분투에 힘입어 현재 약 20여명의 교수들이 대학 강단을 중심으로 학계에 포진해 있다. 타 학문이나 산업군에 비해서는 전문가들이 턱없이 적지만 최근들어 멀티미디어·인터넷 등 디지털 매체의 확산으로 저작권 문제가 중요 이슈로 등장하면서 저작권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보겠다는 인재들이 점차 늘고 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2세대들은 1세대들처럼 법학을 바탕으로 저작권법을 연구했거나 사법고시·행정고시 등을 통과한 후 저작권을 전문영역으로 선택한 이들이다. 그러나 1세대들이 법제 연구에 주력했다면 이들은 다양한 현장활동을 통해 저작권법을 현실에 접목시키고 저작권 개념을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이가 서울대 법대 황적인 명예교수(71)다.
황 교수는 정광현 교수의 후학으로 서울대 법대 및 동대학원, 독일 쾰른대·미국 캘리포니아대 등에서 민법을 전공했다. 서울대를 비롯, 수원대 등에서 20년이 넘게 강단에 서면서 1000여명이 넘는 제자들을 배출했고 이 때문에 현재 법조계나 저작권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급 이상의 전문가들은 대부분 황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 교수는 소비자보호원 분쟁조정위원 및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저작권계와 직접적인 연을 맺어왔다. 황 교수는 이를 통해 저작자와 사용자간의 분쟁 해결에도 직접 나서는 등 저작권법의 합리적인 적용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 이를 학문연구에 반영해 강의소재로 활용하는 등 현실성 있는 교육을 몸소 실천하기도 했다.
현재 황 교수는 노구에도 불구하고 저작권신탁관리단체인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이사와 한국지적소유권학회 명예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 각종 저작권 관련 세미나 및 공청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황 교수와 함께 원로급으로 손꼽히는 전 방송통신대학 총장 장인숙 교수(69)는 56년 문화교육부 서기관으로 재직하면서 저작권법 입법에도 참여하는 등 국내 저작권계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고등고시를 통해 문교부 차관까지 지낸 교육관료 출신이긴 하지만 87년부터 4년간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저작권법 개론」 「저작권외국판례집」 등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저작권의 대중화에 일익을 담당했다.
장 교수는 이후 방송통신대·경기대 등을 거치면서 교육현장에서 직접 교육개혁을 실현했으며 지금은 건강상의 이유로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왕성한 활동으로 원로 못지 않게 명성을 얻고 있는 국민대 법대 김문환 교수(54)는 저작권계의 중견급 인사로 꼽힌다.
김 교수는 저작권은 물론, 특허권 및 상표권·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지적재산권 전문가로 통한다. 특히 소비자보호원·특허청·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등의 활동을 통해 다양한 분쟁조정 경험을 쌓은데다 인터넷이나 뉴미디어 등 신종 매체 출현에 따른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도 탁월한 식견을 갖추고 있어 곳곳에서 자문 요청이 쇄도할 정도다.
현재 김 교수는 국민대 산업재산권 대학원장을 맡아 지적재산권 분야의 후학 양성에 주력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녹색소비자연대·지적재산권제도개혁시민모임 등 민간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다.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는 서울대 법대 송상현 교수(59)는 전공인 민사소송법과 상법을 바탕으로 법조계·정부부처·재계 등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인물이다.
송 교수는 미국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현지에서 변호사 및 교수로도 활동하는 등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94년에는 세계지적소유권기구(WIPO) 중재인을 맡기도 했다.
송 교수는 프로그램보호법·대법원 송무제도 등 각종 법제 정비를 도맡아 자문 역할을 해왔으며 특허 및 손해보험 분쟁 등에서도 변호사 시절의 역량을 과시해 많은 중재 선례를 남겼다.
지금은 서울대 법학부 교수로서 민사소송법 등을 강의중이며 민사판례연구회·지적소유권학회·국제거래법학회 등 각종 학회활동을 통해 연구 및 저술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저작권학계에 입문이 늦어 다소 경륜이 짧지만 경희대 법대 이상정 교수(50)도 허리축에 속한다.
이 교수는 서울대 황적인 교수의 후학으로 시나리오·영상·공연·응용미술 등 각각의 문화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문제를 별도로 연구해 다양한 연구결과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산업디자인도 저작물로 인정하고 저작권법을 통해 보호해야 한다는 이 교수의 연구논문은 관련 업계의 인식 전환은 물론, 저작권법 개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교수는 이에 그치지 않고 최근에는 후학들과 함께 기업체를 지원하는 지적재산권 전문 컨설팅 활동을 펼치는 등 산학연계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세대-원로급-중견급으로 이어지는 선배들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최근 저작권계에 갓 입문한 40대 전후의 신세대 교수들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해외에서의 연구활동과 디지털 매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강단이나 업계에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컴퓨터프로그램 저작권보호에 관한 논문으로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서울대 법대 정상조 교수(41)다. 정 교수는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를 전문 영역으로 컴퓨터 범죄 수사대의 자문역할도 맡고 있다.
이외에도 인하대 법대 박익환 교수(40)와 고려대 법대 안효질 박사(38), 성균관 법대 오승종 교수(40) 등 신세대 교수들의 활동도 두드러지고 있다.
비록 대학 강단은 아니지만 국내 저작권계에 있어 가장 활발한 연구 및 저술활동을 보이고 있는 곳은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연구실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최경수 박사(41)가 연구실장을 맡고 있는 이 곳은 20여명에 달하는 전문 인력이 저작권 분야의 응용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이 연구실을 거쳐간 연구원들이 대학강단에 서는 등 저작권 전문가의 산실로도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저작권 분야는 아직까지 그 역사가 짧은 탓인지 학문적 연구 깊이가 상대적으로 미미하고 타 분야와 중첩되면서 독자적인 학문 영역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는 게 또한 현실이다.
이에 따라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저작권에 대한 활발한 연구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산학연을 연계한 민간 연구활동과 학제의 개편이 시급하다고 학계는 지적하고 있다.
특히 선진국들의 저작권 보호 추세에 대응하고 저작권에 대한 국민적 인식 전환을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지원 육성 프레임이 서둘러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저작권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