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활한 의약분업 실시를 위한 필수 정보시스템 가운데 하나인 전자처방전달시스템이 사업 추진업체와 관련단체 간 마찰로 확산 및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김재정)는 최근 민간 업체가 제공하는 전자처방전달 도입 안내에 현혹되지 말라는 공문을 국내 의원급 의료기관에 내려보낸 데 이어 대표적인 처방전달시스템 사업자인 한국통신과 비트컴퓨터에 전자처방전 EDI서비스를 즉각 중지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이에 대해 전자처방전달 업계는 대한의사협회가 6만5000여회원이 가입해 있는 처방전달시스템의 실수요자 모임이라는 점을 감안, 즉각적인 대응을 자제하면서도 협회가 전자처방전달시스템 도입을 반대하는 근본적인 원인 파악에 나서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전자처방전은 불법이다 = 전자처방전에 대한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간 협의가 아직 검토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치 적법한 것처럼 허위, 과장해 전자처방전 EDI서비스를 유도하는 것은 「불법을 부추기는 책임 없는 행동」이라는 것이 의사협회측의 주장이다.
따라서 현재 진료기록부와 처방전을 전자문서화하는 것은 위법일 뿐만 아니라 약사법에 의한 담합의 우려가 있으며 이로 인해 국내 의료계가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협회는 지적했다.
또한 의사협회는 위·변조 처방전의 발생가능성과 전송과정에서의 환자 사생활 침해, 전자처방전 유통시스템 개발 및 의료환경 미성숙 등 제반 문제점 등을 세밀히 검토한 후 전자처방전을 도입해야 하며 전자처방전 발행의 제한적인 적용도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협의해 관련법(의료법·약사법)의 개정을 검토한 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준비단계인 전자처방전달사업 = 현재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전자처방전달시스템은 시범사업 수준이거나 종이처방전의 보조 수단으로만 사용되고 있는 만큼 적법성 여부를 따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발표된 의·정 합의사항에도 「e메일이나 팩스전송 등을 이용한 유사 처방전은 공식 처방전으로 인정하지 않는 대신에 환자의 편의도모 차원에서 보조적 역할만을 수행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더욱이 보건복지부도 지난해 11월 「지식정보사회를 위한 추진과제에 따른 개선방향」을 발표하며 전자처방전도 종이처방전과 동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전자처방전달 업계는 이같은 의·정 합의내용을 존중해 법적 기준이 마련될 때까지 종이처방전과 전자처방전을 병행하는 방식의 시범 서비스만을 전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협회가 이를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최근 의사협회가 전자처방전 EDI서비스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이 사업추진을 즉각 중지해줄 것을 요청한 것은 표면적인 이유 외에 뭔가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 업계의 조심스런 분석이다.
◇거스를 수 없는 전자처방전 도입 =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의약분업 실시에 따른 전자처방전달시스템 구축방안」이란 보고서를 통해 전체 의료기관과 약국에 원외 전자처방전달시스템을 구축할 경우 사회적 순편익이 약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특히 전자처방전을 도입한 약국이용자는 1인당 조제 대기시간이 7.43분, 약국 탐색시간은 12.9분이나 줄었다고 응답했으며 조제 후 모니터링, 약화사고 방지 등과 같은 비계량적 요소까지 포함하면 사회적 이익은 더욱 클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가운데 국무총리실 산하의 규제개혁위원회는 「전자처방전 이용제도 개선」을 정부 규제개혁 대상 업무의 하나로 확정하고 오는 6월까지 제도시행과 관련한 필요사항을 마련, 보고하라고 해당부처에 지시했다. 따라서 올 하반기에는 전자처방전 도입에 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고 일반 병·의원 및 약국의 처방전달시스템 도입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번 의료정보화 업계와 의사협회 간 마찰은 의약분업으로 전자처방 전달을 기반으로 한 각종 의료정보사업이 거대 수요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향후 사업 주도권을 둘러싼 양 진영간의 신경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