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컴퓨공학의 위상

◆김병기 숭실대 정보과학대학 교수 bgkim@comp.soogsil.ac.kr

지난 2월말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대학 및 대학원에 대한 학문영역별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 결과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전산분야에서 소위 명문이라고 알려져 있던 대학이 이렇게 부실했나 하는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대부분 언론이 상위 등급에 속하는 대학만 보도했는데 컴퓨터공학 분야의 상위 등급에는 우리가 잘 아는 대학이 거의 빠져 있었다.

상위 등급뿐 아니라 평가대상 모든 대학의 성적을 등급별로 발표한 결과를 본 사람은 우리나라 대학에 컴퓨터공학 분야를 가르치는 학과가 이렇게 적었던가 하는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나열된 대학의 수가 전기전자정보통신 분야에 비해 훨씬 적기 때문이다.

당초 대교협의 평가대상 분야는 전기전자정보통신 분야와 재료공학 분야였다. 그러자 컴퓨터 분야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문제가 생겼다. 이 문제는 컴퓨터 분야를 전기전자정보통신 분야의 일부로 보느냐, 아니면 독립적인 학문영역으로 인정하느냐 하는 문제와 연관된다. 당연히 전국의 전산 관련 학과 교수들은 이 문제를 민감하게 생각했고 여러 대학의 학과장들이 모여 회의를 개최했다. 그 결과 정보통신 분야의 일부로 평가받는 것은 수용할 수 없으니 나중에 컴퓨터 분야만 별도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결의하고 이런 의사를 대교협에 수 차례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대교협은 여러 번 기준을 바꾸었다. 공과대학에 속하는 학과는 평가대상이고 자연대학에 속하는 학과는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가, 졸업후 공학사를 받는 학과는 평가대상이고 이학사 학위를 받는 학과는 아니라고 했다. 나중에는 정보통신 분야와 별도로 결과를 발표하겠으니 이번 평가에는 원하는 대학만 참여하라고 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컴퓨터공학·전산과학·정보과학 등 어떤 이름을 쓰든 컴퓨터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학과가 모두 참여해 한꺼번에 평가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부분의 대학이 빠져버린 초라한 평가 결과가 무슨 의미가 있길래 대교협은 대학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가를 강행했어야 할까. 더구나 많은 대학이 우왕좌왕하며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고 비참여 대학의 학과장들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불이익 때문에 겁을 내는 대학 직원들을 설득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들면서 말이다.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산분야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도 그 원인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살 길은 IT뿐이라고 말하면서 IT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이 분야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부분은 매우 부족하다. 전자공학이나 정보통신의 일부분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학문의 역사로 보아도 초창기에는 대학에 독립된 학과가 없었고 응용수학과나 전기공학과, 전자공학과에서 조금씩 가르치는 정도였다. 서울대에 계산통계학과가 생기면서 많은 대학에서 통계학과 전산학을 같은 과에 수용했고 후에 컴퓨터공학과니 전자계산학과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거의 비슷한 내용을 가르치는 학과가 약간 다른 이름으로 자연대에도 있고 공대에도 있어 연구집단을 대형화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연구역량을 분산시켰다. 게다가 신생 학문이라는 약점까지 안고 있었으니 학문의 독립성을 주장할 만한 힘이 없었던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으려 해도 일부는 순수과학의 수학 부문에 있고, 일부는 공학 분야에서 찾아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프트웨어 산업은 제조업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서비스업으로 분류됐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전산 분야의 특수성과 독립성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 학문이나 산업현장에서뿐 아니라 각종 행정지원 업무나 법·제도 등에서도 이 분야를 위한 배려가 뒤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물론 중요하지만 관련 분야인 전자나 정보통신 분야의 이해와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일정한 크기의 파이를 서로 나누어 먹는 경쟁자가 아니라 힘을 합쳐 파이를 키우는 협조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