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기술의 발전으로 이루어진 역사에서는 더욱 그렇다. 획기적인 신기술이 발명되더라도 그 기술로 인해 인류사회가 큰 변화를 맞게 되기까지 대부분 약 반세기의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 흥미롭다.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준 대표적인 기술로는 인쇄술과 증기기관 그리고 컴퓨터를 꼽을 수 있다. 1377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직지심경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세계 인류 문명사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은 1445년 구텐베르그에 의해 만들어진 금속활자였다. 금속활자를 가진 인쇄술이 진가를 발휘한 것은 그 후 반세기가 지난 1517년 마틴 루터가 교회의 면죄부판매에 대항하며 일으킨 종교개혁이 계기가 됐다. 그전에는 일일이 필사해야 했던 성경이 대량으로 만들어져 배포되기 시작하면서 지식이 책을 통해 대중에게 급속하게 확산되는 변곡점이 된 것이다.
증기기관은 1765년 제임스 와트에 의해 처음 발명됐다. 그로부터 60년후, 1825년 스티븐슨이 발명한 증기기관차는 철로 위를 달리며 산업자본의 대동맥을 만들어가기에 이르렀다. 증기기관 기술 역시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크게 바꿔놓기까지는 반세기에 이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또 다른 기술의 변곡점은 컴퓨터가 가져왔다. 최초의 컴퓨터는 1946년 유니백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그런 컴퓨터 15대만 있으면 전세계의 컴퓨터 용량을 충족시킬 것이라던 전망과 달리 컴퓨터는 끝없는 기술적 향상을 거듭하며 발전해온 끝에 반세기 만에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가장 대표적인 환경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인터넷 기술이다. 오늘날 4억 인구가 인터넷을 이용하기까지는 불과 5년여만의 일이다. 인간이 인간을 만나 거래하고 함께 숨쉬는 거대한 가상공간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50년도 아닌 5년여 만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인터넷은 도깨비 방망이처럼 클릭 한번 하면 마술같은 세상을 열어주는가 하면 그 열기가 거품처럼 사라져 도깨비에 홀렸다가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상실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미션 크리티컬한 삶의 한 부분이 돼버린 인터넷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얼마전 미국에서 방영된 어느 TV 광고를 본 적이 있다. 혼자 공원에 앉아 미친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무언가에 열중하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한 남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안경에 부착된 컴퓨터 영상을 통해 전개되는 주식시황을 살피면서 무선통신을 통해 거래주문을 내는 일상의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인터넷이 눈에 안보이는 공간으로 숨어들어간 것이다.
이미 기술은 미처 따라가지 못할 만큼 빠르게 변해왔으며 갈수록 그 속도가 빨라지고 폭이 깊어만 간다. 마이크로 칩을 내장한 많은 가전제품들이 지능화된 정보가전으로 변하고 있다. 슈퍼컴퓨터 역시 인간게놈지도를 해독하는 수준에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지금도 이같은 변화를 쫓아가기조차 힘겨울 지경인데 지금보다 100배 혹은 1000배 이상 빠르고 값싼 신기술이 나올 때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생명공학이 발전되면 자동차의 부속을 교체하듯 규격화된 인체의 장기를 쉽게 바꿔치기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입고 있는 속옷이 스스로 우리 몸의 혈액순환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하면 박동수를 증가 또는 이완시키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자동으로 바깥 기온을 감지해 항상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항온·항습을 조절해 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은 더 행복할까. 인간은 진정 그러한 변화를 원하고 있는가. 아니면 더 이상의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정보격차를 기술의 발전이 해결해 줄 것인지, 아니면 더 큰 파국을 초래할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인터넷 기술의 끝을 100이라는 수치로 표현한다면 우리는 이제 겨우 15 수준에 와 있다고 한다. 분명히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며 미래의 새로운 변화된 환경 속으로 우리를 이끌어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의 발전도 분명 사람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 기술이 주도하는 디지털 세상이라지만 여전히 인간적인 「따듯한」 시각을 보듬고 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
<김형회 회장(바이텍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