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을 방문, 북한의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정보기술(IT)의 현황과 미래에 관해 강연을 한 비트컴퓨터의 조현정 사장은 북한의 컴퓨터 사용자들이 한글 자모나 영문 알파벳이 없는 컴퓨터 자판을 통해 문자를 입력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처럼 컴퓨터 자판을 보고 문자를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판을 머릿속에 암기해 입력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북한의 컴퓨터 분야 종사자들이 최근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운용체계인 「리눅스」를 「리낙스」라고 발음한다며 남북한간 컴퓨터 용어의 이질감이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남북한간 용어 이질화 현상은 북한에서 자주 사용되는 「빛섬유 까벨」이라는 용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말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 힘들다.
그러나 북한에서 사용하는 「빛섬유 까벨」이란 용어는 우리나라 정보통신 분야에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광섬유」라는 용어에 다름아니다.
그동안 북한에는 인터넷이 전혀 깔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국제 인터넷 도메인기구에 등록된 인터넷 도메인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98년까지만 해도 지구상에서 인터넷이 통용되지 않는 나라는 북한과 라오스뿐이었다. 폐쇄적인 정치체제에서 개방화된 인터넷이 확산될 경우 주민 통제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북한 당국에서 운영하는 공식 사이트들이 국내에도 조금씩 소개되고 있다. 조선인포·조선신보·조선중앙통신·구국전선·조선콤퓨터쎈터(KCC) 등 공식 인터넷 사이트들이 등장,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직 공식 사이트 외에는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웹사이트 중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다.
이상 몇 가지 사례들은 남북한간 정보격차 현상의 일단을 보여주는 예에 불과하다. 이 같은 남북한간 정보격차는 향후 남북한이 통일될 경우 정보통신 및 IT 분야에서 엄청난 통일 비용이 필요할 것임을 시사한다.
현재 북한의 정보 인프라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그러나 몇 가지 자료들을 통해 유추해 보면 북한의 통신 인프라가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지난 98년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발행한 「세계 정보통신 보고서」를 인용해 작성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가입자 회선수(일반전화)는 지난 96년 현재 110만회선으로 남한의 약 18분의 1 수준으로 나타났다. 100명당 회선수에서는 북한이 4.90, 남한이 43.04로 남한의 9분의 1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북한은 90년대 통신망 현대화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90년 8월 북한과 유엔개발기구(UNDP)간 광섬유통신 개발사업에 합의했으며 평양과 함경북도·강원도·평안남도의 주요 도시간 통신선 광케이블 공사를 추진했다. 또한 92년 4월 UNDP 지원으로 평양 광케이블 공장을 건설하고 95년 1월 평양-함흥간 광케이블 공사(300㎞)를 완료했다. 이어 98년 2월 평양과 신의주, 신의주와 평안북도 내 16개 시군 및 3개 노동지구 사이의 400㎞에 달하는 광섬유케이블 공사 및 전화자동화 공사를 완료했다.
북한은 이를 통해 공식적으로 지난 97년 말까지 70여개의 시군과 단위에 전화자동화를 실현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 통신망의 디지털화 비율은 4.6%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현재 북한 통신 인프라의 열악함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성형구조라고 지적한다. 시외교환국간의 연결이 직접 이뤄져 망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평양에 모여 분산되는 중앙집중적인 구조라는 지적이다.
여기다 일반인이 사용할 수 있는 공중전화 시설 등은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김정일 위원장이 IT 분야와 국가 정보통신 인프라를 강조하는 IT 교시를 잇따라 발표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IT산업을 국가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외부에 알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최근 들어 북한도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평양방송 보도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전국을 포괄하는 「광명」 과학기술컴퓨터망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으며 지난 한 해 이 망에 가입한 말단 컴퓨터 대수가 전년에 비해 1.7배 늘어났으며 최근 2년 동안 컴퓨터망의 규모는 4.6배로 늘어났다.
평양방송은 올초 보도에서 『우리식의 컴퓨터망 프로그램 묶음인 「광명」은 과학기술자료의 봉사를 전문으로 하는 중앙과학기술통보사 외에 김일성종합대학·인민대학습당·과학원 발명총국·내각성위원회-성-중앙기관 등 기관망들, 각도 지역 중심망들이 망라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광명」 컴퓨터망 프로그램 묶음은 과학기술자료 검색체계, 컴퓨터 우편체계, 컴퓨터 소식체계, 홈페이지 검색체계, 자료 전송체계로 구성돼 있으며 망 가입자들은 중앙과학기술통보사의 자료기지와 여러 국부망의 과학기술자료들을 임의의 시각에 원격호출해 찾아볼 수 있고 서로 당정책 문제 및 긴급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새 기술자료, 각종 문건·자료들을 편리하게 주고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일반인들은 정보통신 인프라의 혜택을 아직 받고 있지 못하지만 연구자나 공공기관 사용자들은 정보통신망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기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인사들은 북한이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폐쇄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비록 서방세계에서 바세나르협정을 통해 고급 사양의 컴퓨터 유입을 차단하고 있지만 펜티엄은 물론 유닉스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평양 PC조립공장에서 연간 3만여대의 PC 조립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컴퓨터가 대량 보급돼 있는 단계는 아닌 듯하다.
업계 전문가들은 남북한간 정보격차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정확한 정보 교류와 공조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인포비젼의 이경수 사장은 『남북한이 윈윈전략 차원에서 통일 이후의 디지털 디바이드를 해소하기 위한 북한의 정보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남북한간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남북한간 방송 교류도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통독 과정에서 서독의 방송이 동독 지역으로 월경하면서 양국간 이질감 해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과 마찬가지로 방송의 역할이 지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아직 남북한간 TV 및 라디오 수신기의 보급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문화부가 지난 98년 발표한 「통일대비 방송체제 구축」 보고서에 따르면 TV의 경우 현재 북한에 약 200만대가 보급돼 있는 데 비해 남한은 1600만대 이상이 보급돼 있다. 라디오는 북한이 약 470만대를 보유하고 있는 데 비해 남한은 4200만대 이상이 보급돼 있다. 또한 남한이 NTSC방송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북한은 PAL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직접 수신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최근 북한에도 태국의 위성체를 활용한 위성방송이 시작됐고 우리나라도 디지털 위성방송이 중국 옌볜 지역에서 수신되고 있다. 이 같은 방송환경 변화는 양국간 이질감 해소와 정보격차 해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