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용 소프트웨어(SW)의 불법유통, 와레즈 사이트의 불법운영, P2P 방식의 파일 전송 서비스인 「소리바다」에 대한 음반업계의 지적재산권 침해 소송, 인터넷 자살 사이트의 운영 등으로 연일 일간지 사회면이 시끌벅적하다.
과거에는 일부 네티즌이나 컴퓨터를 잘 사용하는 사람들에 국한되던 문제들이 점차 사회적인 이슈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어느덧 정보화의 한복판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사례다.
인터넷의 보급 확산으로 많은 네티즌들이 프리웨어나 상업용 SW를 공개자료실에서 내려받거나 음악파일을 공유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 돼 버렸다.
그러나 매사가 그렇듯이 디지털시대에도 명암은 있다. P2P 사이트나 인터넷 공개자료실을 통한 디지털 콘텐츠 및 SW 유통으로 네티즌들을 디지털 세계의 풍요로움에 흠뻑 젖게 했으나 다른 한편에선 불만의 싹이 움트고 있다.
SW업계·음반업체 등 지적재산권을 갖고 있는 사업자들이 이들 디지털 콘텐츠서비스제공자들이 지적재산권을 정면으로 침해하고 있다며 법적 대응조치를 불사하고 있다. 저작권자 입장에선 너무나도 당연하다.
최근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보화시대로 접어들면서 그동안 전혀 생각지도 못하던 각종 디지털 의제들이 등장해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 디지털 의제들은 단순히 사회적인 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쟁송사건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 정진섭 부장검사는 정보사회의 이면에 잔뜩 똬리를 틀고 있는 디지털 분야 쟁송사건에 대해 10여년간 천착해온 인물이다.
그는 작년에 공식발족한 컴퓨터수사부 부장으로 취임하기 전에는 형사6부 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불법SW 단속 등 주로 지적재산권 관련 수사업무를 전담해왔다. 현재 불법SW 관련 수사는 대부분 형사6부에서 처리하고 있으나 일반적인 컴퓨터 범죄나 인터넷을 통한 SW 불법유통 등에 관한 수사는 컴퓨터수사부에서 맡고 있다.
『최근 들어 컴퓨터 범죄는 예전과 달리 소스코드를 도용하거나 SW를 불법으로 복제하는 것에서 탈피해 점차 비즈니스모델(BM)이나 콘텐츠 도용, 영업 및 개인 비밀의 침해 등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보다는 피해자와 가해자간에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커지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특징 중 하나죠. 물론 인터넷의 확산으로 통신망을 통한 컴퓨터 범죄가 컴퓨터 범죄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죠. 검찰은 이 같은 기술적인 추세를 감안해 컴퓨터수사부 내에 인터넷수사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컴퓨터 범죄가 다양해지고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커지고 있으나 상당수 컴퓨터 범죄들은 범법성 여부를 판단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고 정 부장은 지적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인터넷 자살 사이트나 섹스 스와핑 사이트의 경우 분명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단순히 자살이나 섹스를 매개한다고 해서 처벌하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가령 자살에 관한 책을 출판하거나 섹스 행위를 매개한다고 해서 그 자체가 처벌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재 정 검사가 부장으로 재직 중인 컴퓨터수사부는 지난해 2월 공식발족됐으며 이제 발족한 지 갓 1년을 넘었다. 출범한 지 얼마 안됐지만 백지영 성행위 동영상 판매 유포 사건, 삼성전자와 LG정보통신간 휴대폰 단말기 관련 영업 비밀 유출 사건, 하이마트 인터넷 도메인 선점 사건, 나모 에디터 프로그램 무단복제 유통 사건, 인터넷 음란사이트 개설 사범 집중단속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다뤘다.
요즘에는 음악파일 전송 사이트인 「소리바다」 문제를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정 검사는 「소리바다」건 역시 절반 이상의 네티즌들이 불법행위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계속 이용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워낙 네티즌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사이트인 데다 아직 소리바다가 국내 P2P서비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검사는 소리바다 전체 사용자들로부터 진술서를 받기가 힘든 상황인 점을 고려해 현재 대표적인 사용자 300여명을 대상으로 e메일 진술서를 받고 있다며 최근 수사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정 검사는 컴퓨터수사부가 앞으로 신종 컴퓨터 범죄를 근절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정 검사는 『지난 2월 업무조정을 통해 불법SW 등 지적재산권 관련 사건을 형사6부로 이관한 만큼 앞으로는 컴퓨터 수사 고유업무에 보다 충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컴퓨터 범죄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는 정 부장이 컴퓨터범죄 분야에 뛰어든 것은 10여년 전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도깨비 한글카드」 사건을 다루면서부터다.당시 컴퓨터에서 한글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글 지원카드를 컴퓨터에 별도로 장착해야 했는데 전자상가를 중심으로 불법복제된 한글카드가 대량 유통됐던 것.
이 사건 수사를 담당하면서 컴퓨터 범죄에 눈을 뜨기 시작한 정 검사는 이어 사회적으로 이목을 끈 「아래아한글 2.0」 불법복제 사건을 담당했다. 당시 아래아한글은 하드웨어 방식의 잠금장치를 사용해 불법복제를 방지했는데 부산 지역 게시판(BBS)을 통해 잠금장치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불법복제물이 대량 유통됐다. 당시 정 검사는 부산지검에 근무하면서 아래아한글 복제 사건을 수사했다.
이 같은 수사 경험이 그를 검찰 내 컴퓨터 범죄통으로 인식시키게 됐다.
그는 90년대 초반 대검찰청에 설치된 「21세기 연구기획단」 등에 근무하면서 검찰의 정보통신 기본계획 수립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검찰은 IBM 주전산기와 더미터미널을 사용했는데 검찰 정보통신 기본계획이 수립되면서 일선 검사들에게 PC가 보급되고 각 지청에 근거리통신망(LAN)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컴퓨터 분야에 전문적으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컴퓨터 수사 분야의 전문가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 정 부장이 지난해 처음 발족된 컴퓨터수사부를 이끌면서 점차 지능화되고 있는 컴퓨터 범죄를 수사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정 부장은 앞으로 컴퓨터수사부를 반석에 올려놔 우리나라에서 컴퓨터 범죄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
<약력>
△78년 경희대 법학과 졸업 △79년 제21회 사법시험 합격 △80년 경희대 대학원 법학석사 △81년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검사 △84년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 국제부 수료 △91년 부산지검 고등검찰관 △93년 춘천 지방검찰청 영월지청 지청장 △94년 대검찰청 전산관리담당관(부장검사) △97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원장 △99년 서울지검 형사6부 부장검사 △2000년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 부장검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