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삼십대 이상의 록 음악 애호가들에게 제프 벡은 그리 낯선 인물이 아니다. 그들에게 제프 벡은 소위 3대 기타리스트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사실 선정기준이 애매하긴 하지만 당시 팬들은 에릭 클랩턴, 지미 페이지, 제프 벡 등이 바로 그들이라는 식으로 객관식 답안처럼 외우고 다녔다. 이들은 모두 전설적인 밴드 야드버즈 출신인데 재미 있는 것은 야드버즈 이후에 기타리스트로서 각기 다른 길을 걸었다는 점이다.
에릭 클랩턴은 크림이나 데릭 앤 도미노즈 등을 거치며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거듭났으며 이후 솔로로 전향해 지금껏 메인스트림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미 페이지는 위대한 밴드 레드 제플린를 이끌며 밴드형 기타리스트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한편 제프 벡은 솔로 초기에는 자신의 밴드를 만들어 스트레이트한 록 음악을 들려줬지만 1975년 작품인 명반 「블로 바이 블로」부터 재즈 록을 기반으로 한 인스트루멘털 기타리스트로 거듭났다. 제프 벡은 그리 대중적인 뮤지션은 아니었지만 5년이나 10년을 주기로 혁신적인 앨범을 발표하면서 기타 연주의 모범답안을 제시한 「기타리스트의 기타리스트」로서 존경을 받아왔다. 또한 지치지 않는 실험정신으로 지금의 헤비메탈을 있게 한 디스토션 사운드와 피드백 주법, 그리고 토크박스 주법 등을 창안하거나 대중화시킨 장본인
으로 유명하다.
이번에 발표한 「유 해드 잇 커밍」은 전작 「후 엘스!」에서 실험적으로 접근했던 테크노와의 결합을 완성하고 있는 역작이다. 그는 과거에도 그룹 형태로 발표한 「투루스」 이후에 내놓은 「벡-올라」나 재즈 록 기타 인스트루멘털의 장을 연 「블로 바이 블로」에 이어 발표한 「와이어드」처럼 전작의 실험정신을 이은 연장선상에서 완성도 높은 앨범을 낸 바 있다. 그의 완벽주의에 기반한 이러한 작업방식은 전작과 거의 동일한 라인업으로 앨범을 만듦으로써 가능했으며 본 작도 예외는 아니다.
수록곡 중 「어스퀘이크」는 4분의 6 박자와 4분의 5 박자를 오가는 변박자곡으로 기타로 세상을 뒤흔들겠다는 그의 포부가 느껴지는 힘있는 곡이다. 「로이스 토이」는 샘플링을 절묘하게 사용한 곡인데 기타연주가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톰 모렐로를 연상시킨다. 「롤링 앤 텀블링」은 제프 벡이 발굴한 이모겐 힙이라는 여성 싱어의 독특한 보컬이 돋보인다. 이 외에도 새소리와 대화를 하듯 연주를 하는 「블랙버드」와 긴장감이 감도는 아름다운 곡 「서스펜션」 등이 수록돼 있다.
이번 앨범 역시 그다지 대중적인 앨범은 아니다. 하지만 음악감상이 단지 들려지는 것을 듣는 게 아니라 조금은 노력해서 찾아 듣는 것이고 그 음악에 익숙해지도록 자주 듣는 것이며 또한 이후에도 계속 손이 가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필청」 음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