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수업 시간이요? 자율학습 시간이에요. 다른 학교 친구들 얘기를 들어봐도 마찬가지죠.』
『대학 입시에 도움도 되지 않는데 컴퓨터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잖아요.』
서울 모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의 말이다. 이처럼 정보소양인증제를 위한 고등학교 컴퓨터 수업이 파행을 겪고 있다. 그 이유는 일선 대학의 참여 미비와 고등학교의 파행적인 교육, 외부기관이 실시하는 시험준비의 미비 등 때문이다.
정보소양인증제는 교육부가 고등학생의 정보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일정수준의 정보소양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인증을 주고 대학입시에 가산점을 부여한다.
정보소양인증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네 가지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에서 2단위 이상의 컴퓨터 수업을 한 학기 이상 듣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학교에서 특별 활동으로 34시간 이상의 컴퓨터 수업을 듣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주관하는 정보소양인증시험에 통과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상공회의소나 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주관하는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따는 것이다.
문제는 이 인증을 받더라도 대학 입시에서 별다른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도도입 초기에 교육부는 정보소양인증을 전형자료로 활용할 예정인 대학수를 전국 192개 대학의 77.6%인 149개라고 밝혔다. 하지만 2002년도 대학 입시에 정보소양인증을 입시에 반영하는 대학은 37개에 불과했다. 당초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학이 정보소양인증의 입시 반영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인증의 실질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
현재 고등학교에서 실시중인 컴퓨터 교육은 아직도 90년대 커리큘럼을 벗어나지 못한 채 진부한 내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모 고등학교의 한 학생은 『컴퓨터의 원리나 정보화 개론 등 실제 컴퓨터 사용과 무관한 내용이 많아 흥미가 떨어진다』며 『학생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자율학습으로 대체해 주요 과목 공부나 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이 고등학교의 컴퓨터 담당교사는 『컴퓨터 교육을 위해 비싼 기자재까지 마련했지만 대입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입시 반영을 검토하다가 백지화한 연세대학교 입학관리처의 관계자도 『고등학교에서 배운 정보화 교육은 대학에 입학하면 다시 배우게 되는 내용으로 입시에 반영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교육비 부담도 대학의 제도도입을 가로막고 있다. 서강대학교 입학처 관계자는 『가뜩이나 사교육비 부담이 많은 학부모에게 또 다시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며 『특히 인증을 받기 어려운 재수생이나 검정고시 출신 수험생과 상대적으로 인증을 따기 쉬운 재학생의 형평성 문제도 제도도입을 취소하게 된 결정적 계기』라고 설명했다.
또 공교육에서 인증을 받지 못하는 수험생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외부기관의 인증시험도 준비 부족으로 수험생의 애를 태우고 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주관하는 정보소양인증시험은 오는 5월 27일로 2001년도 첫 시험을 앞두고 있지만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이 시험을 대행하고 있는 컴퓨터기능인증본부가 애를 태우고 있다.
더욱이 시험용 교재가 온라인 교재를 제외하고 1권밖에 나와 있지 않아 시험을 준비하는 재수생이나 검정고시 출신 수험생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다.
컴퓨터기능인증본부의 관계자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4월 초에 이 시험과 관련된 문제집을 출간할 예정』이라며 『애초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시험 전형료를 대폭 낮추고 부족분을 교육재정에서 충당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