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열리는 「제7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그 어느때보다 많은 기록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관심의 초점은 총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글래디에이터」가 역대 최다 수상작의 기록을 경신할 것인가의 여부와 외국어 영화로는 가장 많은 후보에 오른 「와호장룡」이 어떤 성적을 거둘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한 액션 로맨스 「글래디에이터」가 노미네이트된 12개 부문을 모두 석권하게 되면 아카데미 최다 수상작인 벤허(59년)와 타이타닉(97년)의 11개 부문 수상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글래디에이터」는 60년대 이후 영화 장르에서 사라진 로마시대의 웅장한 스펙터클을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글래디에이터」가 최다 수상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서는 많은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글래디에이터」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라 대만 출신 리안 감독의 정통무협서사극 「와호장룡」이다. 「와호장룡」은 최우수 작품 및 감독상 등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전세계 영화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와호장룡」은 대사를 영어 자막으로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강도 높은 액션과 환상적인 시각효과, 러브스토리와 여배우들의 동양적 캐릭터가 한데 어우러져 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이 영화는 북미지역에서 외국어 영화 사상 최고 흥행기록인 1억달러의 흥행을 올리면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이번 아카데미는 서양의 검투사와 동양의 무사가 한판 대결을 벌이는 양상이 돼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미국인들이 과연 서양 검투사와 동양 무사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것도 아카데미를 즐기는 요령이 될 것이다.
부문별로 최우상 작품상 후보에는 「글래디에이터」 「와호장룡」 외에 재벌전기회사의 식수오염사건을 다룬 「에린 브로코비치」, 마약 스릴러 「트래픽」, 새로 문을 연 초콜릿 가게를 통해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의 변화와 개방을 조명한 「초콜렛」이 올라 있다.
감독상 후보로는 에린 브로코비치와 「트래픽」의 스티븐 소더버그, 「글래디에이터」의 리들리 스콧, 「와호장룡」의 리안, 발레리노를 꿈꾸는 가난한 소년의 성공담을 그린 「빌리 엘리엇」의 스티브 댈드리가 노미네이트돼 있다.
남우주연상은 톰 행크스 외에 「글래디에이터」의 러셀 크로, 추상화가 잭슨 폴록의 전기를 다룬 「폴록」의 에드 해리스, 표현의 자유 투쟁을 소재로 한 「깃촉펜」의 제프리 러시, 쿠바 망명작가의 일대기를 그린 「밤이 오기 전에」의 하베에르 바르뎀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톰 행크스는 「캐스트 어웨이」에서 체중을 무려 20여㎏이나 줄여가며 혼신의 연기를 펼쳐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점쳐진다. 행크스가 이번에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선정되면 지난 94년 「포레스트 검프」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 등을 포함해 세번을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여우주연상을 놓고는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재벌회사의 비리를 캐내는 변호사 보조역을 잘 소화해낸 줄리아 로버츠와 고단한 세상살이 속 남매의 애정을 주제로 한 「날 믿어도 돼」의 로라 린니, 「꿈을 위한 진혼곡」에서 약물중독자로 나온 앨런 버스틴, 「초콜랫」에서 초콜릿 가게 주인을 맡은 프랑스 배우 줄리엣 비노시, 정치 풍자 스릴러 「더 컨텐더」에서 부통령 후보역을 맡은 조앤 앨런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두번이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고배를 마신 줄리아 로버츠는 이번이 세번째. 그러나 올해는 예년과 달리 가장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 1월 열린 「피플스 초이스 어워드」에서 최고 여배우로 뽑혔고 「내셔널 보드 오브 리뷰」 「골든 글로브」, 영국의 BAFTA상을 휩쓸었다. 특히 동료 배우들이 꼽는 SAG(Screen Actors Guild) 어워드에서도 최고 여배우로 선정돼 그녀의 아카데미 수상이 유력시되고 있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