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나가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지난 2월 중순 유럽의 정보기술(IT)강국 아일랜드, 핀란드, 스웨덴을 둘러보고 느낀 점은 IT강국으로 부상한 이들 세 나라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세 나라 모두 인구가 적다. 아일랜드 370만명, 핀란드 520만명, 스웨덴 880만명으로 우리나라 서울시의 인구에도 못미치지만, 인구가 적은 대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두번째로, 세 나라 모두 「국토」가 척박하다. 아일랜드는 감자농사도 잘 되지 않는 유럽의 변방, 유럽의 열등국이었으며, 핀란드와 스웨덴은 북극에 가까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차가운 동토에서 어업과 펄프·제지업이 국가 산업의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IT산업 같은 기술집약적인 산업에 승부를 걸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핀란드에는 노키아가 있고, 스웨덴에는 에릭슨이 있다.
세번째로, 세 나라 모두 「높은 교육열」을 자랑한다. 세계화 및 정보화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모두 「창의력 향상교육」과 「기술위주의 교육」에 집중했다. 아일랜드에서는 대학교를 제외한 초등·중등·전문학교와 대학원을 무료로 다닐 수 있고, 370만명의 인구 중 전업학생이 100만명이다. 특히 스웨덴과 핀란드는 산학협동의 전통을 확립, 부족한 기술 및 연구인력을 대학에서 보충하였고 대학에서는 빠른 기술의 변화에 적응하는 「실용적인 연구」가 가능했다.
네번째로, 세 나라 모두 영어를 잘한다. 세 나라 모두 모국어가 있지만 영어와 모국어를 모두 일상적으로 함께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비즈니스 언어는 영어로 정해져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나라 모두 「IT강국의 비전」을 높이 세웠다는 점이다. 10년전 세계 어느 나라도 주목하고 있지 않을 때, 세계에서 1등가는 「IT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 계획을 수립, 실천, 평가, 조언하는 전담 위원회를 구성하고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어 「정보화사회」 실현을 착실히 추진해왔다.
한국이 만일 90년대초부터 IT에 눈떴더라면 지금쯤 일본 경제를 추월했을지도 모른다. 최근 아일랜드는 영국을 추월했고 핀란드는 스웨덴을 추월했다. 수백년 동안 식민지로 억눌려 살아온 아일랜드와 핀란드가 이웃 강국 영국과 스웨덴에 통쾌한 역전 드라마를 연출한 셈이다.
산업혁명기에 전기와 내연기관이 세상을 바꾸었듯이 이제 IT가 역사를 바꾸고 있다. 아일랜드가 10년전 IT산업에의 집중과 해외투자 유치로 정보화사회의 드라이브를 걸었고, 핀란드는 10년 전 역시 노키아를 중심으로 한 IT산업의 선택과 정보화 일등국가 만들기에 나선 반면, 우리는 90년대초 한보철강을 짓는 데 5조원, 경부고속철도를 까는 데 20조원을 투하하는 우매한 선택을 저질렀다.
한국의 비전은 IT에 있다. IT는 이제 더 이상 정보통신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IT는 네트워크 장비와 컴퓨터 프로그램과 유무선 통신기술, 그리고 인터넷에만 응용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제 IT는 국가재설계 작업으로 이해돼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국가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고, 국가경쟁력을 한 단계 향상시키는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를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의 어젠다는 IT에 맞춰져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IT를 통해 재검토하고 새롭게 재구축해야 한다.
2001년 3월 23일 현재 우리는 100명의 수재보다 1명의 천재가 더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창의적인 교육」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리고 세계화 시대를 앞서가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 대다수가 「영어」를 잘해야 한다. 당장 내년으로 다가온 2002년 월드컵이라는 세계 최고의 축제를 잘 치르는 것도 「영어」를 잘 하는 국민이 많으면 훨씬 수월하다. 마지막으로 「컴퓨터」를 잘 다루는 국민이 많아야 한다. 컴퓨터와 영어를 잘하는 창의적이고 세계화된 인재들을 양성하는 데 우리 교육의 지표가 모아져야 한다.
10년전 비슷한 25위권에 머무르던 아일랜드, 핀란드, 대한민국이 10년이 지난 2000년 현재는 국가경쟁력 순위 7위, 3위, 28위로 벌어져 있다. IT를 통해 새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가 사회 전반을 혁신하지 않으면 앞으로 10년 후에도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이제 IT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이 우리를 바짝 뒤쫓아오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다시 농업이나 제조업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IT는 생존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