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협력시대」

국내 가전업계의 영원한 맞수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마침내 두손을 맞잡았다.

삼성전자 한국영업사업부와 LG전자 한국영업부문은 최근 수차례 접촉을 통해 각각 삼성전자의 캠코더와 LG전자의 가스오븐레인지를 상호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공급하기로 전격 합의하고 실무담당자 차원에서 구체적인 협의에 들어갔다.

양사의 이번 상호 OEM 공급 합의는 단순히 품목수를 늘려 매출을 늘리기 위한 차원보다는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의 강점을 서로 인정함으로써 국내 가전산업의 경쟁력을 높여가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양사는 이번 상호 OEM 공급이 사상 첫 시도인 점을 감안, 충분한 사전검토 후 유통시장에 혼란을 야기시키지 않도록 양판점 등 신유통점에는 공급하지 않고 리빙프라자와 하이프라자 등 대형 대리점과 중소형 전속 대리점에 한해서만 공급하기로 했다.

또 「주력 제품에 핵심 역량을 집중한다」는 최고경영층(CEO)의 경영방침에 발맞춰 단계적으로 상호 OEM 공급 품목 및 물량을 늘려 나갈 방침이다.

이에 따라 신유통점의 급부상과 일본업체들의 잇단 한국시장 직접공략 등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장환경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유통망의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 배경=삼성전자 한국영업사업부와 LG전자 한국영업부문이 이같은 결정을 내린 데는 최고경영층의 경영마인드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즉 「내수시장에서 과열경쟁보다는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한다」는 것.

또 무역자유화 바람이 거세지고 수입다변화품목 폐지 등으로 인해 올해 파나소닉·소니·마쓰시타 등 일본업체들이 내수시장 공략을 본격화함에 따라 내수시장이 글로벌 경쟁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고성장을 거듭하는 반면 각사가 부족했던 주방용기기와 AV를 강화하는 대안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양사는 가스오븐레인지와 캠코더 사업을 위한 개발에 매달리는 데 따른 자금투입과 개발기간을 소진하는 등 비효율적인 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 서로가 품질력과 브랜드 인지도가 있는 제품을 과감하게 아웃소싱하는 전략을 채택하기로 했다. OEM 협력을 통해 시장에 조기 진입,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자는 전략이다.

◇ 영향=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각사만의 특화된 제품을 서로 공유하게 된다면 캠코더 시장과 가스오븐레인지 시장에서 상당한 시너지효과를 이뤄 기존 시장판도의 지각변동은 불가피하게 됐다.

삼성전자는 LG전자의 가스오븐레인지 「쁘레오」란 고급 브랜드를 자사의 새로운 프리미엄 브랜드인 「메르헨(Merhen)」으로 출시, 취약했던 주방용 시장에서 힘을 얻게 됐다. 삼성은 최근 10억원을 들여 개발한 5개 가스오븐레인지 모델에 LG전자의 모델을 접목함으로써 「지펠(양문여닫이냉장고)」 등과 마찬가지로 프리미엄 브랜드로 육성, 주방용 가전제품을 한층 강화하게 됐다.

LG전자도 자사 「엑스캔버스(프로젝션TV)」란 프리미엄 브랜드와 함께 삼성전자의 디지털캠코더를 OEM으로 받아 AV부문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하게 됐다.

특히 캠코더 시장이 지난해 200% 이상 성장하는 등 급신장되는 추세에 있어 삼성전자의 디지털캠코더를 기반으로 적극적인 마케팅·판촉·광고 등을 전개함으로써 연내 10% 이상을 점유한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소니 등 일본산이 캠코더 시장의 60%를 점유하는 등 외산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구도속에서 LG전자는 삼성전자와 함께 공동으로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외산제품의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 전망=삼성전자와 LG전자가 OEM 품목을 서로 교환, 각각 판매함으로써 품목의 다양화로 추가 매출의 발생과 함께 유통망의 안정화를 꾀하고 외산 길목을 일부 차단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등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고위 경영진간에 OEM 협력이 현장에서 가시화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적지 않다. 우선 각사 실무진이 경쟁심리가 워낙 강한 데다 수익성·생산성 등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결론이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이번 OEM 협력은 수익성 차원보다는 가전의 대표적 간판인 양사가 제품력에서 힘을 합쳐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대처하자는 대승적인 차원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이번 OEM 협력은 각 사업부와 유통 등 실무차원에서 부정적인 견해가 적지 않아 성사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를 계기로 양사가 무한경쟁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협력시대를 열어가는 신호탄이 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