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의 타계 소식에도 불구하고 22일 주식시장은 현대 계열사 중 임원들이 일괄 사표를 제출하며 구조조정 의지를 강력히 내비친 현대증권과 현대엘리베이터의 주가가 외자유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크게 올랐을 뿐 현대전자·건설·자동차 등은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고 중공업·기아차 그리고 현대전자가 대주주인 현대정보기술(관계사) 등은 소폭 하락하는 애도장세를 보였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미 정 전 회장이 경영권과 지분에서 상당부분 손을 놓은 상태였고 현대 계열사가 정몽헌·몽구·몽준의 3개 부문으로 계열 분리를 진행중이어서 일단은 「왕 회장의 타계」에도 주가에 변화를 줄 만한 요인은 크지 않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정 전 회장의 영향력이 없어진 만큼 그동안 진행되던 그룹사간 상호 출자지분의 매각 등 계열분리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결국 현대 계열사의 주가는 하나로 묶어주던 큰 틀이 사라졌다는 영향보다는 개별기업의 행보와 업종별 시장상황에 따라 좌우될 것이란 전망이다.
◇MK·MJ 맑음, MH 흐림 =정몽구(MK) 회장 계열의 현대차·기아차의 상승세와 정몽준(MJ) 의원 계열의 현대중공업의 강세, 정몽헌(MH) 회장 계열의 현대전자·현대건설의 상대적 약세 분위기는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MH계열의 현대전자는 이미 유동성 부족 등이 거론되며 흠집이 난 상태여서 환율상승으로 수혜가 기대되는 현대중공업이나 지난해 자동차그룹을 묶어 좋은 영업실적을 올린 현대차·기아차보다는 고전이 예상된다는 것. MK·MJ 계열사들이 MH쪽의 부실사인 현대전자와 건설을 지원하게 될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점도 「MK·MJ 맑음, MH 흐림」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현대전자에 악재인가 =증시 전문가들은 정 전 회장의 타계가 현대전자에 추가적인 어려움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정부가 그동안 현대전자에 지원을 했던 것은 정 전 회장의 후광이라기보다는 반도체라는 산업의 특성상 국내 기업을 육성하려 했고 LG반도체와의 빅딜을 추진했던 주체로서 책임론에 휘말리기 싫었기 때문』이라며 『정치권의 의중을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현대전자에 피해가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전자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도 이날 현대전자의 자구계획은 이상없이 추진될 것이라는 내용의 발표문을 내놓아 그간의 진행과정과 달라질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