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욱 과기부 장관(jusoe@most.go.kr)
20세기가 마이크로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나노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나노(nano)란 10억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로 1나노미터라고 하면 머리카락의 1만분의 1이 되는 초미세의 세계가 된다. 이를테면 원자 3∼4개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다.
기존의 전통기술로는 이런 극한의 세계를 다룰 수 없어 물질을 원자나 분자 단위에서 다루는 미래의 기술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반도체의 집적도를 지금보다 대폭 높이려면 0.1마이크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 폭발적으로 늘어날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려면 소자를 최대한 작게 만들어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 또한 생명공학분야에서의 유전자치료를 보편화시키려면 나노의 세계를 제어하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21세기 나노기술은 우리 인류가 기술혁신 과정에서 반드시 확보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술로 부상하고 있으며, 파급효과도 엄청날 것이다.
예를 들면, 나노 수준에서의 물질현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토대로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분자합성과 물질개발이 가능하다. 미국 의회도서관의 모든 자료를 저장할 수 있는 손톱 크기의 칩이나 몸에 휴대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터도 만들 수 있다. 혈관 속을 돌아다니면서 병을 진단할 수 있는 초소형 기구나 특정 부위에 정확하게 약물을 전달하는 장치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나노기술은 90년대 들어 연구가 시작된 개발 초기단계에 있다. 전문가들도 나노기술이 본격적으로 활용되는 시점을 2010∼2030년으로 다양하게 보고 있다. 아직 실험실 수준에서 몇 개의 원자를 배열하여 문자를 구성하고, 원동기 기어를 조립하여 선보이는 기초연구 단계에 있다.
그러나 초기 연구단계이긴 하지만 위의 사례는 인류가 이러한 기술에 도전하여 분명히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과학의 빠른 발전추세와 활용 가능한 주변기술의 발전속도를 고려하면 나노기술의 활용은 훨씬 앞당겨질지도 모른다.
선진국들은 이미 나노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며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0년 연두교서를 통해 정보기술·생명기술과 더불어 나노기술을 21세기 3대 핵심기술로 규정했다. 범부처 차원의 종합육성계획인 「국가나노기술개발계획(National Nano-technology Initiative)」도 마련했다.
의회에서도 2001년 예산을 작년보다 50% 이상 증액하여 승인했다. 미국 전체가 나노기술 개발에 얼마만큼의 정책적 무게를 두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일본도 작년 한해에만 연간 4000억원 정도를 나노기술 개발에 투자하였으나 더욱 본격적인 도전을 위해 「나노기술 장기개발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독일 등 유럽 각국도 개별 국가별 기술개발계획은 물론 EU 컨소시엄 등을 구성하여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들어 나노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넓게 확산되고 있고 정부의 연구개발지원도 상당히 활발하다. 김대중 대통령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노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학기술부는 2∼3년 전부터 창의적 연구진흥사업, 국가지정연구실사업, 우수공학연구센터 및 우수과학연구센터를 지원하여 나노기술의 저변육성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작년에는 프런티어연구개발사업으로 「테라급 나노소자개발사업」을 선정, 나노기술연구에 시범적으로 착수했다.
민간부문에서도 주로 대기업이 중심이 되어 나노기술을 활용한 정보소자와 주요 소재개발을 목표로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아직 초기 연구단계이고 투자규모·전문인력·연구시설 등에서도 상당히 미흡한 실정이다. 국가 전체적으로 힘을 모아 본격적인 기술개발을 서둘러야 할 때다.
10∼15년 후를 내다보고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연구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연구설비도 확보해야 한다. 우리가 선진입지를 확보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이에 집중투자하면서 우리의 힘만으로 어려운 부문은 외국과 제휴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세계 어떤 나라와도 경쟁할 수 있는 창의적 두뇌가 있다. 나노기술 개발의 필요성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도 커졌다. 세계적으로도 아직 초기 연구단계이므로 우리가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기술선진국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분야다.
현재 정부에서는 나노분야 기술개발을 본격 추진하기 위해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안)」을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는 향후 10년간에 걸쳐 우리나라가 중점적으로 추진할 연구분야와 추진방법·인력양성계획 및 시설구축계획 등이 포함될 것이다.
부처간 협의와 공청회 등의 절차를 거친 후 금년 7월중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상정해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이제 우리도 나노기술의 신천지 개척에 본격적으로 나서 선진국 대열에 동참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