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전자신문 공동>게임강국으로 가는길(3)부실한 지반부터 다지자.

지난해 국내 게임수출은 1억달러를 넘어 섰다. 올해의 목표는 이보다 100% 증가한 2억달러다. 정부는 초과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국내 게임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1134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올해에는 이보다 30% 성장한 1조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는 이같은 장밋빛 청사진을 확신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업계 관계자들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업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국내 게임산업의 경쟁력에 대한 회의론을 서슴지 않고 제기한다.

아케이드 게임업체의 한 CEO는 『국내 게임수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케이드 게임만 놓고 보면 사실 일본산 아이디어를 복제해 저가로 공급함으로써 수출규모만 늘렸을 뿐 독자적인 기술개발이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상품화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었다』며 『이같은 상황은 일부 온라인 게임업체를 제외하면 전 분야에 걸쳐 비슷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무엇보다 국내 게임산업의 기초가 부실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컨대 일본의 경우 5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아케이드산업은 인력·시장·기술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업계 나름의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것. 특히 가정용 콘솔 게임 분야에서는 게임기라는 확실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독보적인 기반 기술이나 하드웨어 플랫폼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창적인 기획력이나 전세계적인 배급이 가능한 소프트웨어적인 시스템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한국멀티문화협회 박원서 회장은 『전국 2만5000개의 PC방이나 2만여개의 컴퓨터 게임장과 같은 인프라는 게임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훌륭한 인프라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게임산업의 시스템이 없습니다. 할리우드가 세계 영화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자본·사람·기술 등이 결합된 영화 공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에는 게임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박원서 회장의 전무(全無)라는 주장이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상당수의 업계 관계자는 국내 게임산업의 기초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력·기술·자금 등 산업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이 부실하다.

우선 인력의 경우 게임이 소프트웨어산업인 만큼 어찌 보면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하지만 국내 현황은 열악하기 그지 없다. 게임종합지원센터(소장 성제환)가 국내 게임업체 62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게임전문인력양성에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게임 업체의 평균 종사자 수는 21명이며 10명 미만도 21.7%로 나타났다. 최근들어 고품질의 대작게임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다. 특히 직능별 평균 개발자 수를 보면 기획·프로듀서가 2.18명, 그래픽 디자이너 5.16명, 프로그래머 4.74명, 시나리오 작가 0.63명, 사운드 크리에이터 0.53명으로, 기획·프로듀서와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게임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개발자들의 81.7%가 재교육을 받지 않아 국산게임이 질적인 향상을 하는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에 따라 게임 개발업체들의 대부분(조사 대상의 61.3%)이 게임 개발 인력을 별도로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으며 특히 직능 분야로는 기획·프로듀서 분야의 인력 양성이 가장 선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국내 게임 인력 문제가 시장 기능에만 맡겨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다행히 게임지원센터가 지난해부터 2년제의 게임아카데미를 개소했으며 올해에는 단기 인력 양성소와 사이버 게임대학 등을 신설할 계획에 있어 인력난 해소에는 다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면 병역특례 제도의 확대, 기술 자격제도의 신설, 우수 학원 인증제도 시행, 전문 인력의 정보관리 및 인력 뱅크 구축, 일반 대학·게임업체간의 산학 연대 등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게임 개발의 핵심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게임 엔진이나 하드웨어같은 핵심기술 분야에서 요소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외국 업체에 기술적

으로 종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종합지원센터는 「일본전자게임산업의 성장요인 분석 및 대응전략」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게임분야의 요소기술을 7개로 분류, 33개 항목으로 구분해 국내 게임 기술의 현황을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전체 항목중 57.5%에 해당하는 19개 항목의 기술을 국내 업계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표 참조

특히 콘솔형 게임 플랫폼기술(가정용 게임), 체감형 시뮬레이터 제작기술(아케이드 게임), 3D엔진·아케이드 범용 3D엔진, 온라인 범용 엔진 등 게임 개발에 핵심적인 요소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해외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원센터는 비디오 콘솔 게임의 플랫폼과 유무선 네트워킹 접속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차세대 게임정보단말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실시간 3D엔진도 우선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정부 부처 어느 곳에서도 게임 기술 개발에 관한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부 온라인 게임업체나 덩치가 큰 게임 배급사를 제외하고는 자본유치 조치도 쉽지 않은 상황이고 보면 국내 게임업계는 열악한 인력, 취약한 기반 기술, 부족한 자금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것처럼 위태롭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정부와 민간단체, 기업들은 힘을 합쳐 지반 다지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