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지적재산권 침해 몸살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기업들이 무단으로 사용해 출연연과 기업간 발생하는 기술분쟁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28일 출연연 및 벤처업계에 따르면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연구원들이 벤처기업을 창업하면서 연구기관 소유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거나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지난 99년 2건에 불과하던 지적재산권 침해 적발사례가 지난해 10건으로 5배나 증가했으며 올들어서도 이달 현재 6건이나 적발됐다.

ETRI는 이들 지재권 침해사례 가운데 능동형 안테나 관련 기술을 도용한 업체에 대해 소송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침해업체와 기술실시계약을 맺거나 무단 사용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ETRI측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지적재산권 침해사례 증가가 연구원 창업의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상용화전략실을 통해 전문인력을 배치, 집중적인 점검에 나서는 등 지재권 침해 실태 파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재권을 각각 1200건, 600건 보유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생명공학연구원도 지재권 침해가 빈발하고 있으나 이를 조사할 전문 인력이 없어 정확한 실태파악마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KAIST측은 『아직까지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온 교수가 없기 때문에 실태 파악에 나선 적이 없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생명연의 경우도 지재권을 무단침해한 사실이 밝혀진 사례가 아직까지 단 한건도 없다.

이같은 현상은 기업들이 출연연의 특허 보유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한데다 특히 경제적인 이유 등을 들어 몰래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자칫 불법 소프트웨어의 사용 못지않게 지적재산권 침해 문제로 봉착할 수도 있다.

최근 출연연과 벤처기업간 발생하고 있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기술분쟁의 유형을 보면 기업이 사업시작 전 특허 등 지적재산권에 대한 사전조사 및 분석 없이 제품을 생산·판매하다 출연연의 지재권을 침해하거나 연구기관을 통해 기술을 이전받은 기업이 기술을 개량·개선한 뒤 제품화해 원천기술의 사용여부를 둘러싸고 분쟁을 벌이는 경우, 연구기관과 기업이 공동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한 후 기술실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경우, 연구기관 재직시 직무발명된 지적재산권은 소유권이 연구기관에 있음에도 창업 후 정당한 절차에 따라 기술실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채 무단으로 사용하는 사례 등 다양하다.

벤처로그룹 GIP 특허사무소 박경완 변리사는 『국내에서도 비즈니스모델(BM) 등 외국특허의 무단사용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거론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며 『지재권 침해가 국내일 경우는 상호 타협도 가능하지만 외국 업체가 문제제기했을 때는 손해배상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벤처기업들이 기술개발에 앞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재인식을 해야 할 뿐더러 전문가와의 상담 등을 통해 문제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연연 관계자는 『정부출연연의 기술도 국가 재산이기 때문에 무단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몰래 사용하는 것도 법적·윤리적으로 문제라는 인식 확산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