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부터 2년 동안 경영혁신과 씨름하다 지난해 비로소 장기비전을 세우고 일할 만할 즈음에 그만두게 되어 다소 아쉽습니다. 이제 일할 수 있는 터를 닦아놓고 제대로 된 건물을 지으려다 만 그런 느낌입니다. 재임 기간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주위의 가시 돋친 눈총이었지만 그동안 이루어낸 굵직굵직한 성과들도 참으로 많습니다.』
31일 퇴임하는 정선종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은 지난 임기 3년 동안 과단성 있게 추진한 구조조정과 경영혁신 성과를 회상하면서 겸연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가 IMF라는 한파 속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뼈를 깎는 아픔도 체험했지만 정보통신기술을 선도하는 기관으로 이루어낸 경영실적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동안 일궈낸 성과 중 대표적인 것이 미국 퀄컴사와 지적재산권 분쟁에서 승소해 1억달러의 기술료 분배금을 챙겨놓은 일이다. 당시엔 아무도 승소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자신의 몫을 챙겨야 한다는 정 원장의 집념이 일궈낸 소중한 열매였다. 또 남녀고용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ETRI에 여성직장협의회를 만들었고 여성인력 채용때도 성차별을 없애는 등 확연히 달라진 경영 스타일을 보여줬다.
특히 산업재산권 출원이 출연연구원 출원건수 가운데 60% 이상을 점하고 있고 지난 79년부터 97년까지 224건이었던 기술이전 건수는 정 원장 재임기간인 98년부터 올해 3월까지 422건에 달했다. 이에 따라 기술료 수입액도 재임기간 중 1211억원에 이르는 등 탁월한 경영성과를 나타냈다.
『이제 남아 있는 연구원들을 뒤로 하고 새로운 삶을 찾을 작정입니다. 쉬고는 못 배기는 성격입니다. 정부의 개혁이 계속돼야 하듯 저도 16년간이나 살아온 연구단지의 한켠에서 벤처정책 등을 연구하며 대덕밸리를 위해 마지막까지 헌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희망합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