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 넘치는 데뷔작 「억수탕」과 「닥터K」에 이은 곽경택 감독의 세 번째 영화.
흔히 교복세대라 일컬어지는 386세대의 이야기를 담은 「친구」는 감독의 자전적 테마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함께 있을 땐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던 네 명의 친구가 어린 시절부터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친구」는 감독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고이자 자신과 주변 친구들의 성장영화이긴 하지만 주된 드라마의 흐름은 깡패가 돼 서로 다른 길을 가야 했던 두 친구의 이야기다.
세월이라는 여과기를 지나 감독이 얘기하는 「친구」의 모습은 억센 부산 사투리와 교복세대라는 영화적 핸디캡을 과감히 벗어 던지게 한다.
부산에서 자란 네 명의 토박이들을 연기해내는 배우들의 모습도 한꺼풀 때를 벗어던진 느낌이다.
쉽지 않을 것 같은 자신의 과거를 풀어내는 감독의 시선은 30대에게 아련한 향수와 함께 정직한 인생의 중간 매듭을 생각하게 한다. 다소 지나치게 향수를 자극하기 위한 작위적 설정에서 촌스러움이 묻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무난하게 20여년을 아우르는 문화적 코드들은 낡은 흑백 사진첩을 뒤척이듯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다.
건달 아버지를 둔 의리 있는 준석, 숫기 없는 모범생 상택, 포르노를 비롯해 신기한 물건을 많이 갖고 있는 중호, 준석의 뒤를 쫓아다니는 장의사집 아들 동수.
어려서부터 동네 뒷골목을 뛰어다니며 함께 바다에서 수영을 하던 네 명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점차 서로 다른 운명으로 접어든다.
평범한 엘리트의 길을 걸어가는 상택이나 중호와 달리 공부는 뒷전인 준석과 동수는 이미 학교에서 소문난 「짱」이다.
극장에서의 패싸움 후 준석과 동수는 학교마저 퇴학당하고 본격적인 건달의 세계로 접어든다. 대학에 입학한 후 상택이 만난 준석은 마약에 찌들어 있고 동수는 수감돼 있는 상황.
몇 년 후 아버지를 여읜 준석은 부친이 몸 담고 있던 조직에 들어가고 출감한 동수는 준석을 배신하고 새로운 조직의 행동대장이 된다. 이후로 같은 부산상권을 노리는 준석과 동수의 조직은 점차 부딪치는 일이 잦아지게 된다.
「친구」는 지극히 개인사적인 회고에서 출발한 영화지만 뜬금 없는 호기심으로 목청을 높이던 초등학생 시절에서 왠지 모를 분노와 거칠 것 없는 뜨거움이 가슴을 감싸안았던 중고등학생 시절, 이미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인생을 와 버린 것 같이 느껴지던 20대의 어리석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파편들이 하나둘씩 다가서며 친구라는 낱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평론가 yongjuu@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