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취재기-통일IT시대로 가는길](3/끝)통일IT 마스터플랜 세우자

사진; IT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해서는 남북 당국간 통일에 대비한 그랜드플랜 마련이 시급하다. 사진은 김책공대를 방문한 방북단.

“북측의 IT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터넷 체제에 편입되는 것이 시급합니다. 이미 할당된 ‘kp’ 주소를 하루빨리 활용해야 합니다.“(인터넷정보센터 이승민 주소정책과장)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인터넷 부문은 정책적 판단이 요구되고 그런 점에서 이 자리에서 결정하거나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 주십시오.“(민경련, PIC, 김일성종합대 관계자들)

남북 IT교류협력의 물꼬가 터지고 남측 연구기술진이 잇따라 방북, 공동사업을 모색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인프라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수립, 집행해야 할 인프라 강화책은 경제가 아닌 정치문제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북측이 비록 IT입국을 내걸고 컴퓨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프로젝트의 성격상 정부 당국이 단안을 내리고 정책적으로 이끌어야 할 분야가 너무 많다.

인터넷도 그렇고 현안이 되고 있는 한글 워드프로세서 코드문제도 사실은 정부 당국간의 협의가 선행되어야만 민간이 현장에서 이를 풀어나갈 수 있다.

전화선을 이용한 초고속통신망 역시 남과 북의 통신현대화계획이 일정 부분 합의된 상황에서 기업별, 지역별 구축작업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이번 방북단이 절감한 것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통일IT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남북 정부간 ‘통일 IT지도’를 그려내는 큰 틀의 마스터플랜 수립이 시급하다.

남측의 예에서 보듯 IT산업은 하드웨어 혹은 소프트웨어로 나뉘어 각개약진하는 식의 성장은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국가의 비전을 내걸고 정보화 밑그림을 그려준 이후 민간이 세부 실행 프로젝트를 맡는 단계적 접근이 요구된다. 사회 전반의 IT역량을 총체적으로 배가시키는 전략이 정보대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우리 정부는 통일시대에 대비, 북한지역의 정보통신 현대화 계획을 갖고 있다. 북한 역시 나름의 IT 마스터플랜을 확보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남북 당국간 서로의 그림을 제시하고 일정부분 공감대를 형성하면 민간의 교류협력은 급류를 탈 것이다. 정보통신 기본계획이라는 포석이 깔리면 민간은 스스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찾아낼 것이고 누가 권하지 않아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6·15 선언에 이어 장관급 회담 등을 통한 후속조치에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방북단은 이같은 당국간 공식작업이 이루어지기 전에라도 몇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확인했다. 우선 민간이 지핀 IT교류협력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간차원에서 북측과 접촉하는 하는 IT인사들은 통일시대를 준비한다는 열정 하나만으로 사람을 만나고 사업을 구상한다. 이제 막 가시적 성과가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방북단 가운데 기가링크가 반출한 제품은 우리 정부의 허가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고 심지어 중국세관에서 제품을 억류, 애를 태웠다.

통일IT포럼과 하나비즈닷컴이 추진하는 중국 단둥지역 정보센터 설립도 이미 북측 정부기관을 대표한 민경련이 합의했음에도 해당 정부부처의 허가서를 요구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탓에 현지에서 진통이 있었다.

또 남북 교류협력에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나서 혼란을 자초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북한 진출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고 해서 제살깎기, 과당경쟁을 벌였던 과거의 해외 건설수주와 같은 상황이 재현돼서는 곤란하다. 현지에서 파악한 바로는 벌써 그같은 조짐이 보인다.

방북단의 김부섭 큐빅테크 사장은 “50년간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다. 기술지원, 소프트웨어 공동개발 등 당장에 무언가 결실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고 했다. 김 사장은 또 “첫 방북이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밝혔다.

통일IT시대를 여는 한 기업인의 소회이지만 그의 꿈이 조금씩 실현되려면 이제 남북 양측 정부가 대답해야 할 차례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