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극장가에 봄 햇살이 아닌 태풍이 몰아닥쳐 오고 있다.
태풍의 핵은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
지난달 31일 개봉한 ‘친구’는 개봉 열흘 만에 관객 200만명(전국기준)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우고 있다. 앞서 기록을 경신한 ‘공동경비구역 JSA’ 15일보다 무려 5일이나 앞당겨 달성한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서울 22만명에 전국 58만명이라는 개봉주말 최다 관객동원은 물론 7만명이란 개봉주말 최대 예매기록 등 신기록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에 이은 또 하나의 대박탄생을 예고해주고 있다.
더욱이 이같은 기록경신은 ‘4월 비수기 개봉’과 ‘18세 관람가’라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친구의 인기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대규모 배급에 힘입은 바 크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당시 전국 125개 스크린에서 상영된 데 반해 ‘친구’는 160개 스크린에 올려진 것이다. 또 오랜만에 보는 남성영화라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70∼90년대를 무대로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온 고교 동창생 네명의 행적을 좇는 시놉시스가 그만이라는 것이다.
사나이의 우정과 의리라는 다소 식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영상미 또한 뛰어나다. 특히 서늘한 눈빛으로 다시 태어난 유오성과 진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장동건의 빼어난 연기는 영화 전체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한국영화의 복고풍 분위기도 영화 흥행에 한몫 하고 있다.
검정교복 세대인 30∼40대 중장년층을 영화관객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으며 연한 커피색 화면에 등장하는 많은 소품과 의상은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정윤희와 유지인의 화장품 광고포스터, 영화 ‘ET’와 ‘디어헌터’ 포스터, 포니 승용차, 롤러스케이트장, 도끼 빗, 카시오 태양열시계, 검은 교복과 교련복, 거리를 누비는 소독차 등이 아련한 옛추억을 되돌아 보게 한다.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가 통일에 대한 관심 및 남북관계 개선 기대에 흥행했다면 친구는 경기침체기에 나타나는 ‘그때가 좋았지’라는 복고성향을 타
고 인기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이 작품은 지나친 남성영화라는 점, 폭력과 욕설에 따른 18세 이상의 영화등급 등의 한계성을 갖고 있으나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작품성과 완성도만 갖추면 관객이 몰려든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대작 콤플렉스에 짓눌려온 충무로가가 ‘친구’를 통해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나듯 활기에 차 있다.
‘친구’가 ‘공동경비구역 JSA’의 590만명, ‘쉬리’ 578만명의 관람객 기록을 돌파할 수 있을지 마니아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영복기자 yb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