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회사 별난 전문가

‘정보처리기사, 전자기기기사, 음향영상기기기사, 지게차기능사·굴삭기기 능사·RS-1 통계자격증….’

하이닉스반도체 이천생산본부 장비기술6팀 박중언 과장(34)이 가진 자격증들이다.

반도체 측정장비와 공장자동화(FA)장비를 유지보수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박 과장은 85년 입사이후 10여종 20여개에 달하는 자격증들을 따느라 하루도 밤잠을 편히 잔 적이 없다. 귀가후면 각종 수험서와 씨름을 하고 일요일에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자격증 실기시험을 치러다니는 게 일상적인 일과였다.

대부분의 회사동료들은 그의 이런 기인(奇人)같은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격증 편집증 환자’ 아니냐며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 일쑤였다. 몇 사람은 “별 쓸모도 없는 일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한다”며 말리기도 했다.

동료들도 이제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에 경외감을 내비친다. 특히 박 과장은 지난 2월 사내위탁대학인 청강문화산업대학 컴퓨터소프트웨어과에서 만점(평점 4.5점)을 받고 수석 졸업하면서 그의 숨은 노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공고출신인 그가 엑셀·파워포인트·비주얼베이직 등 각종 프로그램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업무에 적용해 반도체장비의 가동률을 계산하고 각종 부가 장비의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는 등의 결과물 이면에는 16년간 혼자 흘린 땀이 배어 있었다는 평가다.

뒤늦게 알려졌으나 그는 사내 연수원에서 꽤 오랜기간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다방면의 실력과 저력을 안 연수원의 한 관계자가 그를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사내강사로 초빙했던 것. 4년제 정규대학을 나온 신입사원은 물론, 자신보다 높은 직급의 간부들도 그의 수강생들이다.

요즘 그가 맡고 있는 강의는 ‘산업용 로봇 컨트롤’ 등을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모터제어기술과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작동 원리를 파악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적용하는 것이다.

또 이를 바탕으로 동료들과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신기술 습득에 여념이 없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보면 도전을 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는 그는 또다른 자격증에 도전할 것이냐는 질문에 “최근 유망한 IT자격증에 도전하고 싶지만 우선은 그동안 배운 것을 업무에 활용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이노텍 기술전략팀 이범연 과장(42)은 특허전문가다.

점점 고도화·복잡화 돼가는 지적재산권 분쟁에서 LG이노텍을 지키는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92년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특허분야에 전문가가 필요하다며 사내 특허전문가 양성과정을 제안하고 그 때부터 이를 직접 운영해왔다.

생산부서와 설계실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전자부품 특허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게 그의 업무다.

넉넉한 체구만큼이나 마음이 넓고 인정이 많지만 지적재산권 분쟁 등 특허업무를 접할 때에는 날카롭고 치밀한 판단력으로 깔끔하게 일 처리하기로 유명하다.

사실 LG이노텍의 특허 업무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전자부품의 특성상, 부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짧고 특허 마인드가 약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과장은 자신의 역량과 특허 업무를 한 단계 끌어 올리기 위해 선진기업과 각종 교육의 장을 스스로 찾아 다녔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특허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또 발명의 날을 도입, 운영하고 특허제도를 개선함으로써 특허 활성화에 크게 기여, 연 500여 건의 특허출원이라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관련부서와 함께 패턴트 맵(patent map)을 수립하여 효과적인 특허분쟁 예방대책을 마련, 대응하고 특허분석기법 교육과 유용한 특허정보를 주기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외국업체와의 특허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해 디지털 인센티브를 받기도 했다.

앞으로는 이 과장은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특허권에 대한 가치를 평가, 로열티 등의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공격적인 업무 추진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핵심기술과 지적재산권을 확보하느냐,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하느냐가 기업발전의 키가 될 것”이라며 그는 “언젠가 특허 전문지식과 업무의 노하우를 중소기업에 제공하는 등 특허 업무의 전반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일조하는 것이 작은 꿈”이라고 말했다.

<정지연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