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는 반도체·LCD와 더불어 21세기 세계 정보기술(IT) 기기용 부품 시장을 리드할 3대 핵심 부품으로 손꼽힌다.
왜냐하면 컴퓨터를 비롯한 모든 모바일 정보통신기기에는 ‘두뇌에 해당하는 반도체’와 ‘눈에 해당하는 디스플레이’ ‘심장에 해당하는 2차전지’가 반듯이 탑재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2차전지가 차세대 IT기기의 핵심 부품으로 평가받음에 따라 일본·미국 등 선진국들은 2차전지를 국가기간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세계 2차전지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2차전지 관련 부품, 장비, 공정기술 등의 해외 수출까지 국가적 차원에서 간접통제할 정도로 2차전지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정부의 적극적인 보호·육성책에 힘입어 세계 2차전지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소니는 “명성은 가전에서 얻고 돈은 2차전지에서 번다”는 말까지 듣고 있을 정도로 2차전지에서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다.
최근 일본 전지 전문 연구소인 야노경제연구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710억7100억엔에 달했던 세계 2차전지 시장규모는 올해 4935억6100만엔, 내년에 5125억5100억엔, 20003년에 5312억8900억엔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표참조
여기에다 현재 이동전화기·노트북컴퓨터·개인휴대단말기 등에 주로 채택돼온 2차전지가 앞으로는 웹패드·e북·웹폰·휴대형 게임기·디지털카메라 등으로 적용 범위가 급속히 확대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차세대 이동통신이라 할 수 있는 IMT2000단말기에는 더욱 큰 용량의 2차전지가 사용될 전망이다. 나아가 전기 자동차의 주력 동력원으로 2차전지가 탑재될 것으로 보여 2차전지는 우리 생활 전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 전망이다.
2차전지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 2년 전까지만해도 일본 이외는 생산국이 전무할 정도로 일본업체의 독무대였다. 전지 관련 최대 특허 보유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도 소형 2차전지 생산에는 손을 사실상 떼고 전기자동차용 대용량 2차전지에만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업체가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2차전지 시장에 LG화학·삼성SDI·한일베일런스·SKC·로케트전기 등 국내 업체들이 2, 3년 전부터 대규모 투자를 동반한 시장 참여를 선언하고 나서 세계 2차전지 시장 주도권을 둘러싼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노기호 LG화학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LG화학은 2차전지를 미래 승부사업으로 선정, 집중 육성할 계획”이라면서 “내수보다는 미국·일본·EU·중국 등 해외 시장을 중점 공략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월 250만개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LG화학(대표 노기호)은 최근 차세대 이동통신기기에 적용될 리튬이온폴리머전지의 개발을 최근 마무리하고 현재 월 50만개 규모의 양산라인을 설치, 완료하고 올 연말 가동을 목표로 현재 시운전중이다.
LG화학은 또 수요 확대에 대응, 내년 말까지 2차전지의 생산 능력을 월 500만개(리튬이온 300만개, 리튬폴리머전지 200만개)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또 2005년까지 월산 1000만개 생산체제를 구축한단는 장기비전도 갖고 있다.
LG화학의 목표는 오는 2005년 2차전지 부문에서 ‘글로벌 넘버 5’, 2007년에는 ‘글로벌 넘버 3’안에 진입하는 것.
LG화학은 LG전자·현대전자의 휴대폰으로 리튬이온전지를 공급하고 있으며 대만의 팩가공업체인 갤럽와이어를 비롯해 노키아·모토로라· 에릭슨 등과는 품질승인 단계에 이르고 있어 조만간 대규모 수출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SDI도 전지사업을 미래 승부 사업으로 펼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월산 22만개 정도의 생산능력을 지니고 있는 삼성SDI(대표 김순택)는 올 연말께에는 연 1억1000만개, 2002년 말 1억4000만개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오는 2003년까지 2차전지 사업에 약 4500억원이라는 거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삼성SDI의 2차전지 생산능력은 연산 1억6400만개에 달한다. 이 정도 규모면 전지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에 버금가는 수준에 올라설 수 있다는 게 삼성SDI의 계산이다. 물론 삼성SDI는 1조원의 매출에 세계시장 점유율 23%를 기록하는 명실상부한 2차전지 세계 톱메이커로 도약해 있다는 게 삼성SDI의 중장기 전지사업 비전이다.
삼성SDI가 이처럼 설비투자 확대에 나서게 된 배경은 우선 삼성전자라는 든든한 후원자에다 대만의 심플로, 미국 컴팩과도 대규모 수출계약을 맺은데다 모토로라·IBM·팜 등과도 전지공급 현상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월산 100만개의 생산능력을 갖고 있는 한일베일런스(대표 이종구)는 올 하반기까지 200만개 체제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일베일런스는 현재 중국 휴대폰업체에 월 10만개 공급계약을 맺은 것을 비롯해 국내 MP4플레이어 업체인 I사에 10만개의 리튬이온폴리머전지를 공급키로 했다. 한일베일런스는 기존 이동전화기·노트북 PC 중심에서 PDA· e북 등 포스트 PC쪽으로 적용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밖에 SKC(대표 최동일)는 올해 말까지 2차전지 양산체제를 구축하고 내년 상반기부터 월 150만개씩 양산할 예정이며 로케트전기(대표 김동영)는 내년 하반기까지 리튬폴리머전지 양산체제를 구축, 월 60만개 이상을 생산할 계획이다.
처음에는 말레이시아 슈빌라로부터 리튬이온폴리머전지를 수입, 전지팩을 공급하는 업체로 출발한 바이어블코리아(대표 이철상)는 최근 평택에 월산 25만개 수준의 리튬폴리머전지 생산 공장을 건설한데 이어 올 하반기까지 생산 능력을 월 50만개로 확대한다는 투자 계획도 갖고 있다.
지금은 미미하지만 국내 업체들의 움직임이 계획대로 이뤄진다면 전지는 우리의 주요 수출품목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국내업체들이 2차전지의 양산에 나서자 소니·산요·마쓰시타·도시바·GS멜코텍·NEC·히타치 등 일본업체들의 견제도 노골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일본업체들은 리튬이온전지의 가격을 덤핑에 가까울 정도로 떨어뜨리고 있다. 가격 견제와 더불어 일본업체들은 최근들어 추가 설비투자를 단행, 규모의 경제로 국내업체를 궁지로 몰아세운다는 전략아래 대대적인 설비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최대 2차전지 업체인 산요전기는 올해 말까지 리튬이온전지를 1000만셀에서 1500만셀로 늘릴 계획이며 마쓰시타전지는 리튬이온전지는 900만셀에서 1200만셀로의 증산을 추진하고 있다. 소니·도시바·하다치막셀도 대규모 투자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세계 2차전지 시장 주도권을 둘러싼 한·일 업체간의 증설경쟁은 이제 막이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밀리는 기업은 아마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희영 기자 h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