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폰 피어러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9년 지멘스에 합류했다. 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대학강단에 서기도 했던 그는 재정 관련 법률업무를 맡아 지멘스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계열사인 크라프트베르크유니언(KWU)의 관리이사, 사장, 지멘스 본사 부사장 등을 거쳐 92년 칼하인츠 카스케에 이어 현재의 직책을 맡게 된다.
당시는 독일 통일 초반. 피어러 사장의 목표설정은 어렵지 않았다. 전임자에 이어 동독지역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게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10억유로를 투자해 동독지역에 세일즈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그 결과, 이 지역에서의 지멘스 외형은 30억유로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피어러 사장은 지멘스 실정에 맞는 ‘TOP’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회사 업무에 탄력을 주고 제반비용을 줄여 생산성을 높여 가자는 게 이 프로그램의 목표. 동시에 혁신을 가속화하고 세계시장에서 성장을 지속시켜 갔다.
피어러 사장은 특히 아시아·태평양지역 시장을 중시했다. 아태지역에 APA라는 비즈니스 위원회를 별도로 두었고 중국의 경우 지멘스 45개 합작부문을 운영했다. 이에 힘입어 아태지역 매출은 92년 20억유로에서 지난해 100억유로로 5배 성장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불어온 글로벌라이제이션 추세의 영향으로 세계 산업계에는 변화가 닥쳤다. 비용압력이 증가했고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 빠르게 변화했다. 시장에서 자본의 영향력이 커졌고 시장개방에 따른 경쟁도 가열됐다. 또한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반도체 시장의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피어러 사장는 시장변화에 맞는 경영원칙을 세웠다. 수익위주의 경영에 나서기로 한 것. 나아가 TOP프로그램을 ‘TOP+’로 강화했다. 이 프로그램의 모토는 ‘목표는 확실하게, 처리는 확고하게, 과정은 견고하게!’였다.
이들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지멘스는 지난해 784억유로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처럼 위기를 헤쳐나가는 피어러 사장의 경영철학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주주와 종업원들의 이해관계에 충돌이 없도록 하는 것. 주주가 지향하는 바와 종업원들의 목표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피어러 사장은 또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앞선 기술만이 미래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경쟁력을 증대시키는 혁신이야말로 지멘스 전략의 중심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셋째, 쉼없이 움직이고, 쉼없이 생각하는 관리자와 종업원이 개인은 물론 회사에 대한 기여도를 높이고 회사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피어러 사장은 올해 다시 한번 지멘스의 변혁을 선언했다. 회사 전부문에 인터넷을 활용해 e컴퍼니로 탈바꿈하겠다는 것. 회사의 모든 활동이 종합 e비즈시스템으로 통합됐다. 조달·판매·개발·제조·로지스틱스 등 회사 전부문에 걸쳐 e비즈를 적용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지멘스에 e지식관리 네트워크를 창조한 것. 이를 통해 피어러 사장은 “지멘스가 전세계 고객에게 첨단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