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3시, 경인방송의 성인 가요 프로그램 ‘성인 가요 베스트 30’의 공개 녹화가 있는 스튜디오에 삼삼오오 모여든 방청객들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분명 30∼40대로 보이는 중년의 아줌마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객석 맨 앞에 자리를 점령하고 앉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어 무대에 등장한 가수는 ‘아줌마 팬클럽’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트로트 한 곡을 멋드러지게 뽑아낸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은 아무나 하나∼”.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어느 댄스 공개홀 못지 않게 뜨겁기만 하다.
벌써 12회를 맞은 ‘성인 가요 베스트30’은 마땅히 들을 노래가 없는 30∼40대들로 부터 “왜 이제야 만들어졌냐”는 핀잔아닌 핀잔을 자주 듣는다. KBS의 장수 프로그램인 ‘가요무대’를 제외하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가요 쇼가 전무한 현실에서 아줌마 팬군단이 이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10대들을 겨냥한 여타 프로그램처럼 ARS집계나 네티즌 투표 결과가 아닌 노래방 순위나 주부 대상 현장 집계를 분석한다. 지상파를 타지는 못하지만 노래방에서 중년층이 자주 부르는 노래가 이들에게는 인
기 가요이기 때문이다.
요즘 가장 인기를 끄는 가수는 ‘카스바의 여인’으로 뜨고 있는 윤희상씨. 7∼8년 방송 활동을 잠시 중단한 탓에 노래방에서만 불려지던 그의 노래가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다시 전파를 타고 있다.
매주 한명의 신인 트로트 가수가 소개되는 ‘신인에게 날개를’ 코너는 오랜 무명 시절을 보낸 가수들에게는 데뷔 무대로 손색이 없다.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에서 구색을 맞추기 위한 들러리로 초대되던 가수들도 이 프로그램에선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주인공이다.
‘성인 가요 베스트30’이 시청자들은 물론 출연 가수들에게도 반가운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30∼40대들이 볼 만한 가요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다소 소박한 희망으로 출발
한 프로그램이었지만 막상 시작하고보니 어려움도 많았다. 순위 프로그램에는 필수인 뮤직비디오는 고사하고 짤막한 비디오 클립 하나 없는 게 트로트 가수들의 현실인 탓이다. 제작팀은 과감하게 카메라를 들고 출연 가수들의 비디오 클립을 직접 제작하기로 했다. 비록 현란한 배경이나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은 아니지만 시청자들의 호응은 남달랐다.
꼼꼼하게 공을 들여 제작하는 만큼 방청석은 늘 만원이다. 첫 녹화 때 100석이었던 좌석을 이제는 160여명을 수용할 수 있게 늘렸지만 여전히 녹화를 못보고 발걸음을 돌리는 아줌마 팬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성인 가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1년이 넘게 사전 작업을 해온 경인방송의 김현서 PD는 “댄스 가요에만 편중된 가요 프로그램들의 틈새에서 성인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며 “호응만큼 보다 내실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