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효자역으로 긍지가 드높았던 전자업계가 최근 통상마찰의 불똥을 맞고 시름에 빠져있다.
전자업계는 그동안 각종 통상압력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위상을 이룩했으나 이것이 오히려 화근이 돼 근자 들어 각종 통상압력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게다가 반도체 등 각종 제품의 수출도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경기둔화로 예전 같지 않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각종 무역규제도 남의 도움없이 풀어나가야 하는 입장이다.
수출입국 선두주자로서의 긍지가 구겨지고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엉뚱한 통상마찰의 불똥을 맞고 있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표참조
그동안 호황을 누려온 반도체업계는 지난해 말부터 64MD램의 가격폭락으로 심한 부진을 겪고 있다. 특히 반도체업계는 가격이 안정세로 돌아서면 회복될 것으로 기대해 왔으나 최근 상황은 수요부진으로 물량마저 줄어드는 기미를 보이면서 과잉생산과 재고확대라는 최악의 상황마저 각오해야 할 실정이다. 더욱이 쌍두마차의 하나인 현대전자는 대외적인 수출환경 변화에 따른 대책마련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생존에 시급한 자금압박 해결에만 매달리고 있다. 하반기부터는 회복될 것으로 기대는 하고 있지만 고달픈 현실은 어쩔 수 없다.
세계 최대 생산국으로 자리해온 전자레인지는 EU지역의 무역규제에다 중국의 급부상으로 벼랑끝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 96년 EU로부터 관세율 적용 대상품목으로 확정판결을 받은 LG전자와 대우전자는 수차례에 걸친 재심을 거쳐 지난 1월에야 천신만고 끝에 3.3%에서 2.4%에 이르는 관세율을 0%로 끌어내려 한숨을 돌렸다.
상업용 전자저울은 아직도 해결이 요원하다. 93년 9.3%에서 26.7%에 이르는 덤핑판정을 받아 98년 규제가 종료될 때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그러나 지난해 다시 EU업체의 제소로 최고 4.9%에 이르는 덤핑혐의를 받고 현재까지 조사를 받아왔으며 반덤핑위원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3.5인치 플로피디스크는 98년 이후 아예 EU 수출이 중단된 상태다. 이 제품은 한국·홍콩산에 대해 8.1%의 덤핑판정을 받아 어렵사리 살림을 꾸려왔으나 지난 98년 소니·후지필름의 요청으로 일몰재심이 개시된 이래 EU 수출물량이 아예 없는 실정이다.
개인용 FAX도 삼성·대우통신 등 4개사가 EU로부터 지난 98년 7.5%에서 17.4%에 이르는 관세부과가 확정돼 외로운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10월에 있은 중간재심에서는 대상품목이 잉크젯 등 프린터로 확대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가전3사는 멕시코·칠레 등 중남미 지역으로부터 덤핑조사를 받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이미 지난 94년 무혐의 판정을 받았으나 지난해 7월 월풀 등 미주 업체들이 냉장고에 대해 제소, 다시 조사가 개시됐다. 3사 냉장고는 멕시코에 이어 칠레에서조차 지난해 말 제소가 발생,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세탁기마저 조사대상품목으로 추가됐다. 최근에는 호주에서도 제소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루머에 시달리고 있다.
지역을 막론하고 걸핏하면 시비를 거는 국산 전자제품에 대한 각종 규제에 대해 정부는 별 도움이 되주지 못한다. 거의 모든 문제를 전자업체들이 막대한 비용들 들여가며 재판도 진행하고, 억울하지만 해결될 때까지 관세를 꼬박꼬박 물어야 하는 입장이다.
정부로서는 전자제품 수출의 문을 열기 위해 다른 제품을 더 수입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염두조차 두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과의 마늘분쟁 해법에서는 정부가 수혜자 부담원칙을 내세워 휴대폰업계에 수입비용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휴대폰에서 막대한 무역흑자를 누리고 있으니 계속 수출을 하려면 이를 부담하라는 식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실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외롭게 수출입국을 이룬 전자업계에 대한 배려 측면에서는 섭섭하기 그지 없다”고 토로한다. 더욱이 이들 중에는 “전자업체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무역적자국들의 통상압력을 수혜자라는 이유만으로 전자업계에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대부분 무역흑자를 보고 있는 국내 전자산업이 통상압력의 희생양으로 전락, 예상치 못하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