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에도 퓨전바람이 불고 있다. 재즈·요리·레저·교육 등 사회 각 분야에 열풍처럼 번지고 있는 퓨전 개념이 최근들어 기업경영에도 활발하게 접목되고 있는 것.
최근 국내기업들은 기존 전통적인 경영방식에 서구식 경영모델을 도입하고 있으며, 대기업들의 경우 벤처기업문화를 심으면서 체질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진출한 외국계 업체들의 경우 한국적인 경영스타일을 접목하면서 독특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가 하면, 벤처기업은 자율성이라는 기본철학위에 대기업의 관리노하우와 체계적인 조직력을 심는 ‘퓨전’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퓨전경영이란=퓨전경영은 결합·융합이라는 퓨전(fusion)의 의미 그대로 다양한 경영기법이나 조류를 함께 취합해 새로운 경영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퓨전경영이라는 용어는 CNBC 앵커이자 하버드대 연구위원으로 활동중인 저널리스트 리넷 리드고우가 최근 출간한 ‘퓨전경영(Fusion Management From Asia & The West)’이라는 책에 의해 대중화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퓨전경영은 서구식 경영기법에 아시아적인 모델을 도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성장한계모델에 봉착해 있는 서구기업들이 단기간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저력을 갖고 있는 일본·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아시아국가의 경영스타일을 접목할 경우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서구식 경영기법과 동양적인(혹은 한국적인) 경영스타일을 가미하는 것 뿐만 아니라 대기업식 경영과 벤처기업형 경영의 조화, 디지털경영과 아날로그경영의 접목 등이 모두 퓨전경영에 포함될 수 있다.
◇왜 퓨전경영인가=퓨전경영이라는 개념이 최근 등장했을 뿐, 경영에 퓨전적인 요소가 들어 있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경영의 기본철학에는 이미 이질적인 조직이나 문화 등에 대한 융합의 의미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퓨전경영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불확실성의 시대, 다변화시대에 접어들면서 경쟁의 요소들이 크게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특정한 일부 경영기법만으로는 이제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과거의 장점들이 현재의 단점이 되거나, 이전의 제약사항이 미래의 성장엔진으로 작용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이는 인터넷의 확산 및 디지털문화의 급속한 확산과도 무관하지 않다. 점포수를 많이 가진 은행이 시장을 지배한다는 룰은 깨질 것 같지 않았지만, 결국 신화는 무너졌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점포없는 인터넷은행시대가 도래했다며 열광했지만 ,이 역시도 진정한 대안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 이는 어느 한 분야의 집중이나 편향된 방식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따라서 퓨전경영을 통해 촘촘한 경영의 그물망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하면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급변하는 시장환경·경쟁환경에서 유연한 대응을 할 수 있게 된다.
◇서구식 모델과 한국적 경영의 결합=이같은 개념을 적극 수용해 최근들어 서구의 합리적 경영방식을 도입하는 국내기업이 늘고 있다. 삼성·LG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이미 연봉제로 전환하면서 기존 연공서열 중심의 조직을 능력별·직무별 조직으로 바꾸고 있다. 인센티브제도 등도 이미 일반화해 있다.
국내진출한 외국계 업체들의 경우는 본사의 조직문화에 한국적인 스타일을 빠르게 심으면서 퓨전경영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한국CA의 경우 중국(창업자가 중국계), 미국(본사 소재지), 한국(지사)의 기업스타일이 혼합된 독특한 경영방식을 갖추고 있다. 미국기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한국만의 독특한 접대나 거래문화를 접목하고 있으며 미국기업이 간과하기 쉬운 예의문화, 선후배간의 협업문화도 회사차원에서 정착돼 있다. 이에 반해 세계적인 IT업체인 S사나 I사는 본사의 경영스타일만을 고집하다 국내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한국CA의 하만정 사장은 “다국적기업의 지사는 외국기업과 국내기업이라는 두가지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만큼, 어느 한쪽에 치우친 경영은 곤란하다”며 “두가지를 잘 조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벤처기업 경영의 접목=닷컴 및 벤처 열풍으로 대기업에서 벤처기업의 문화를 심는 움직임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삼성SDS 등 상당수의 대기업이 사내 벤처조직이나 팀별 아이디어회의 등을 통해 기존 하향식·지시일변도의 조직체질을 바꿔 나가고 있다. 빠른 의사결정체계와 수평적인 조직문화도 빼놓을 수 없는 변화다.
이와는 반대로 벤처기업들은 대기업의 경영 노하우를 배우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시장영역을 확대해 나가면서 조직이 커지가 개개인의 자율성과 협의문화에 의존해온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대기업의 장점인 탄탄한 관리체계,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십, 정보수집력과 인적네트워크 등을 수용하고 있다.
대기업 출신들이 설립한 D업체 사장은 “벤처기업은 대부분 친분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설립되는데, 조금만 조직이 커지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며 “큰 규모 기업의 경영기법이나 스타일을 미리 도입해 체계를 갖춰 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