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엔터테인]DVD방 영상문화의 요람으로 부상

1944년 프랑스 북서부 오마하 해변.

 수백척의 전투함에서 발사하는 귀를 찢는 듯한 대포소리가 등 뒤에서 날아올라 해변가에 포진하고 있는 적의 진지에 작렬하고 해변가에서 날아온 포탄과 기관포가 귓전을 스치고 지나간다.

 상륙정에서 개미떼처럼 쏟아져 나온 병사들은 돌진해 나가지만 해변가에 닿기도 전에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나뒹군다.

 그 어떤 전쟁영화에서도 재현하지 못했던 하이퍼 리얼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도입부 전투신의 한 장면이다. 피가 튀고 포탄이 날아가는 이 장면을 DVD로 감상하는 순간, DVD의 마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120인치 대형 스크린, 정면 좌우에서 뿜어대는 5개의 스피커와 중저음을 처리하는 우퍼의 울림은 마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직접 참전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예요.”

 방금 신촌 DVD방을 나선 연세대 2년 김승우씨(19)는 “온몸에 전율이 느껴질 만큼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며 “커피숍에 들러 잠시 쉬어가야 할 참”이라고 말했다.

 홍익대 3년 이영우씨(21)는 한달 평균 10편의 작품을 감상하는 영화 마니아지만 요즘 극장에 거의 가지 않는다. DVD방으로 영화감상 전략을 바꾼 것이다.

 이씨는 “주말이면 1시간 이상씩 기다려야 하지만 웬만한 극장을 능가하는 디지털영상의 선명함과 입체음향은 물론이거니와 극장과 달리 최신작을 골라서 볼 수 있는 장점에 매혹됐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극장만이 영상문화 공간를 자처하던 시대가 가고 있다. DVD방이 청소년 문화공간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면서 새로운 영상요람으로 부상하고 있다.

 DVD로 실감나는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서울의 신촌과 대학로, 대전 대흥동 서라벌극장 옆, 춘천 강원대학교 앞, 진주 시청앞, 수원 남문앞 등 n세대 문화를 대표하는 거리나 도시 중심상권이 형성된 곳으로 가보기를 권한다.

 DVD방은 현재 전국 주요 대학가를 중심으로 50여개가 성업중이며 올해 말이면 150여개로 늘어나 중소도시까지 그 열풍이 확산될 전망이다.

 DVD방이 젊은층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단순히 DVD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DVD방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카페 분위기로 꾸며져 있고 PC를 이용해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등 만남의 장소나 데이트 코스로도 각광받고 있다.

 마기클럽 대학로점을 방문하면 이러한 점을 실감할 수 있다. 한국방송대에서 혜화로타리 방향으로 5분 거리에 위치한 대학로점은 실평수 80평에 신세대 감각의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어 흡사 고급 레스토랑을 연상케 한다.

 기존 비디오방에서 느꼈던 어두운 이미지는 전혀 없다. 한쪽 면이 온통 대형유리로 구성돼 있어 대학로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평일에도 오후 4시만 되면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한방에 4명이 들어설 수 있는 12개 방은 밤 10시까지 비어있는 틈이 거의 없다. 특히 주말에는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하기 힘들 정도다.

 점포 안쪽에 마련된 대기실 겸 휴게실에는 기다리는 손님들이 무료로 인터넷을 즐기고 있다. PC와 초고속정보통신망은 물론 각종 게임이 잘 갖춰져 있어 손님들이 몇시간을 기다려도 지루해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차를 마시거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점포내에 마련된 초소형 카페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연인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간단한 음료수와 먹거리를 초저가로 즐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이곳 카페를 데이트장소로 이용하는 얌체족도 적지 않다.

 DVD방 가격은 2묭 기준으로 1만2000∼1만7000원. 상영시간이 2시간 반 이내면 1만2000원, 3시간을 넘으면 1만7000원으로 차등 적용하고 있다. 안락한 시설과 화려한 화면에 비하면 충분한 값을 하고도 남는다고 방문객들은 입을 모은다.

 서울의 신촌, 강남은 물론 대전, 창원, 진주, 부산, 광주 등 전국 각지의 DVD방도 사람들로 들끓기는 마찬가지다.

 마기클럽 대학로 김재흥 지점장은 DVD 초보들에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일병 구하기’ ‘매트릭스’ 등 액션물과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클래식 모음집’ 같은 음악 DVD를 추천한다. 이들 영화는 생생한 디지털 화면과 함께 박진감 넘치는 전쟁터의 현장음, 눈앞에서 공연이 이뤄지는 듯한 사운드가 일품이라고. 이밖에도 고전 명작에서부터 최신작에 이르기까지 500여편이 나와있어 취향에 따라 골라보는 재미도 적지 않다.

<신영복기자 yb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