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모르더라도 한글만으로 간편하게 원하는 웹사이트를 찾아갈 수 있어 주목받던 한글 도메인 서비스가 표류하고 있다. 한글 도메인 서비스와 관련한 표준화 작업이 차일피일하고 있으며 한글 도메인 체계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웹브라우저 ‘익스플로러’가 제공하는 키워드 프로그램으로 인해 서비스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글 도메인 서비스는 ‘한글.com’과 같이 최상위 도메인 체계 앞에 한글을 입력해 웹사이트를 찾는 서비스로 지난해 미국 베리사인이 제안해 국내에서도 30만개에 달하는 업체가 이미 등록해논 상태다.본보 4월 27일자 참조
◇파행 빚는 한글 도메인 서비스=지난해 11월부터 등록을 시작한 한글 도메인 서비스는 가비아·오늘과내일·후이즈 등 국내 주요 등록 대행업체의 경쟁적인 판촉에 힘입어 현재까지 등록된 도메인 수만 25만∼30만개에 달한다. 선불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70억원 정도의 금액이 등록비로 지불됐으며 이 가운데 도메인 운영업체인 미국 베리사인에만 20억원 정도의 외화가 빠져 나갔다. 하지만 등록을 받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서비스 개통은커녕 구체적인 연기 사유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베리사인 측은 자국어 도메인과 관련한 표준이 확정되지 않아 서비스가 연기되고 있다고 해명하고 2단계 시범서비스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베리사인 조차 구체적인 상용서비스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으며 한글 도메인을 신청한 대부분의 국내 업체와 개인은 올 11월부터 다시 등록비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내 일부 업체는 등록비를 환불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서비스 연기 이유=가장 큰 문제는 표준도 확정하지 않고 서비스를 강행한 미국 베리사인 측에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한글 도메인과 관련한 표준은 국제도메인관리기구(ICANN) 산하 인터넷기술표준단체(IETF)에서 확정해야 되지만 IETF는 다국어 도메인 서비스의 필요성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표준 결정을 차일피일하고 있다. 이에 따라 늦으면 1월로 확정될 줄 알았던 자국어 도메인 표준안이 기약 없이 연기되고 있다. 여기에 그동안 베리사인이 시범적으로 제공한 서비스 역시 기존 MS에서 제공하던 키워드 서비스 때문에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MS와 리얼네임스가 제공하는 브라우저 방식 키워드 서비스는 리얼네임스에 등록한 경우에는 해당 사이트에,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MSN 검색엔진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다국어 도메인도 한글로 시작하다 보니 주소창에 입력한 도메인을 모두 MSN 사이트로 가져와 그 결과 서비스 장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글 도메인 서비스의 전망=한글 도메인 서비스가 일정조차 확정하지 못하는 등 파행을 겪으면서 미국 베리사인과 도메인 대행업체는 장삿속이 아니냐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특히 서비스에 가장 필요한 표준 자체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글 도메인 등록을 시작하고 약속한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아 앞으로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표준안이 결정돼 상용서비스를 시작하더라도 이미 한글 키워드 서비스가 정착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유명무실한 서비스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결국 한글 도메인는 상용서비스도 시작하기 전부터 어려움을 겪어 서비스를 등록한 피해자만 양산한 채 ‘해프닝’으로 끝날 운명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점치고 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한글 도메인 서비스 파행 일정
일시 = 내용
2000년 11월 = 미국 베리사인 서비스 일정(12월) 발표, 한글 도메인 등록 시작
2000년 12월 = 한글 도메인 서비스 1월로 연기
2001년 1월 = 미국 베리사인 상용 서비스 대신에 3단계 시범 서비스안 발표
2001년 3월 = 인터넷 기술 표준단체(IETF) 표준안 결정 연기
2001년 4월 = 한글 도메인 등록자 반발, 환불 요구
2001년 4월 = 일부 국내 업체 환불 방침 선언
2001년 5월 현재 = 미국 베리사인 상용 서비스 무기한 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