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완의 애니월드>(5)실루엣 애니메이션의 아날로그식 향수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의 진보는 그 끝을 볼 수 없는 듯하다. 95년 월트디즈니의 모험주의와 픽사(PIXAR)의 무모할 정도의 열정은 디지털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이후 전세계적으로 3D와 2D 애니메이션 모두 디지털 방식의 제작이 일반화되기 시작했고 월트디즈니와 픽사의 ‘벅스라이프’에 대항하듯 드림웍스와 PDI의 ‘개미’는 먼저 개봉하는 저돌성을 보이기도 했다. 다시 픽사의 ‘토이스토리2’가 개봉하자 드림웍스는 PDI와 함께 2001년 5월 ‘슈렉’을 통해 기습작전을 감행한다.

 디지털화 바람은 2D 애니메이션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98년 ‘뮬란’은 자금성의 군중과 서커스식의 줄타기 영상을 디지털로 재현했다. 99년 ‘타잔’은 기존 아날로그식 촌스러움을 버리고 롤러코스터와 스노보드 액션으로 무장한 스펙터클의 디지털영상을 선보였다.

 그러나 요즘 아날로그식 필름작업으로 제작되는 애니메이션이 어느 부분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기초적인 애니메이션의 제작 미학를 모른 채 만들어진 디지털 작품의 미숙함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날로그식 제작 미학이 우리에게 애니메이션이라는 제작 장르에 대해 새롭게 눈뜰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96년 ‘월레스 앤 그로밋’이 개봉했을 때 사람들은 흥분했다. 단조로울 것 같던 인형 애니메이션의 정교함에서 애니메이션이의 새로운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1편 ‘달나라여행’에서 보여준 치즈 덩어리 달나라 세계가 신비로울 정도로 따뜻하게 느껴진다. 2편 ‘전자바지 소동’에서 기찻길을 놓는 그로밋의 속도전에서는 영국식 ‘미스터 빈’의 스펙터클을 만날 수 있다. 또 3편 ‘양털도둑’에서 보여준 양떼들의 무표정한 애크로뱃에서 우리는 참았던 아날로그식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2001년 5월 다시 새로운 제작기법이 선보였다. 그림자만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실루엣 애니메이션, ‘프린스 앤 프린세스’가 그것. 이 작품은 이미 200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이 선정한 ‘올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된 작품이다. ‘프린스 앤 프린세스’는 사랑을 가장 잘 적절하게 해석할 수 있는 기법이 아날로그식 실루엣 애니메이션임을 보여준다. 모노크롬의 검은 그림자만으로 시대와 공간 배경을 알려주고 넓은 공간에 자리잡은 소심한 왕자와 마법에 걸린 공주, 그리고 순수한 소년과 여왕 등 다양한 사랑의 대상들로 조용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중간부분에 눈에 들어오는 감독의 애교.

 “지금부터 1분 동안 휴식시간을 갖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옆사람과 수다를 떨어도 좋습니다.”

 역시 아날로그식 여유는 관객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그러나 모두들 걱정하는 눈빛이다. 흥행에는 성공할까. 도대체 제작비는 어떻게 감당했을까. 미셸 오셀로 감독은 실루엣 애니메이션이 과연 돈이 되겠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다.

 “돈이 별로 안들어요, 만드는데….”

 아날로그 애니메이션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그래서 사랑이야기에는 더 맞는 것 같다.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