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전자신문 공동>(9)게임강국으로 가는길-월드베스트를 키우자

국내 게임개발업계의 요즘 화두는 ‘월드베스트’다.

 업체들은 저마다 세계 일류 게임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자연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출시=전세계 배급’이란 ‘글로벌 비즈니스’가 게임 마케팅에 있어 하나의 모범답안처럼 정착되면서 이런 위기감은 날로 더해가고 있다.

 외산 대작 타이틀의 경우 국내외 동시 출시는 기본이다. 최근에는 외국 현지 출시일에 맞춰 한글화 작업까지 마치는 타이틀도 속속 탄생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웬만한 국산 게임은 해외시장은 고사하고 국내시장에서도 기를 펴지 못하는 냉혹한 현실에 처해 있다.

 PC게임시장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지난해 1400억원의 규모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전세계 PC게임 시장규모가 26억6500만달러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4.3%에 지나지 않는 수치다.

 그나마 국내 PC게임 시장의 90% 이상을 외산 게임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순수 국산 타이틀의 매출 규모는 가히 ‘조족지혈’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반면 미국 및 유럽의 메이저 개발사들은 ‘글로벌 비즈니스’를 발빠르게 도입, 전세계 시장을 거의 과점하고 있다.

 특히 ‘워크래프트’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미국 블리자드의 경우 출시하는 타이틀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 세계 최강의 ‘게임명가’로 우뚝섰다.

 데뷔작 워크래프트는 1편과 2편을 합쳐 전세계에 250만장이 팔렸고 지난 98년에 출시된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국내 200만장을 포함, 지금까지 전세계에 500만장(확장팩 브루드워 포함)이나 팔리는 ‘대박’을 터뜨렸다.

 또 최근 국내 PC게임 판매순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디아블로2’의 경우 지난해말 출시 이후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100만장 가까이 팔리는 등 ‘파죽지세’의 인기를 끌고 있다.

 비단 블리자드뿐만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EA·하스브로·인터플레이 등 외국 개발사들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피파’ ‘롤러코스터 타이쿤’ 등과 같은 ‘밀리언셀러’ 대작 게임으로 세계 PC게임시장을 주무르고 있다.

 겨우 수만장 정도 팔리면 ‘대박’이라고 자축하는 국내 게임업체로서는 이들이 한없이 부러운 우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 개발사들의 마인드도 바뀌고 있다. 생존의 차원을 넘어 스타크래프트나 디아블로와 같은 ‘불후의 명작’을 직접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산 게임의 국제 경쟁력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는 점에 대부분 동의한다.

 실제 넥슨의 온라인게임인 ‘택티컬커멘더스’는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2001인디게임페스티벌’에서 대상과 최우수디자인상, 최우수기술상, 관객인기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판타그램이 지난해 말 출시한 ‘킹덤언더파이어’는 최근 국산 단일게임 사상 처음으로 전세계에 40만장 이상 팔리는 쾌거를 거뒀다.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시리즈는 내수시장에서만 65만여장이 판매됐고 대만·일본·중국 등지에 총 20만여장을 수출하기도 했다.

 국산 온라인게임은 ‘월드베스트’에 가장 근접한 분야다.

 엔씨소프트 ‘리니지’의 경우 올 1분기 254억원의 매출을 기록, 올 한해동안 1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천년(액토즈소프트)’ ‘영웅문(태울)’ ‘드래곤라자(삼성전자)’ 등은 대만에서 동시접속자 순위 상위권을 휩쓸어 수출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해외에 비해 제작비나 인건비 단가가 낮은 것도 국제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국산 게임이 월드베스트로 가는 길에는 장벽이 여전히 많다.

 기술력이 어느정도 궤도에 올랐다지만 해외 대작의 복사판이 대부분이고 잦은 버그는 국산 게임의 고질로 남아 있다.

 특히 기획력과 마케팅, 자금력 등은 해외 메이저에 비해 크게 뒤져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해외시장 흐름을 잘 읽는 혜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획단계부터 전세계인의 정서를 반영하지 않고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게임박람회 참가는 기본이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해외 메이저 업체와 교감하는 자세를 전문가들은 요구한다.

 해외의 앞선 기술을 적극 전수받는 것과 함께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세계적인 엔지니어를 키워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풍부한 자금, 글로벌 배급망 등 전세계 마케팅을 위한 물적토대 구축도 풀어야 할 숙제다. 이를 위해 업체간 공동 프로젝트을 통한 규모의 경쟁을 벌이는 것이 하나의 묘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불어 영화·캐릭터·애니메이션·음악 등 다른 문화 콘텐츠와 연계, 글로벌 문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면 성공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이런 노력들이 급류를 타고 있다. 판타그램·소프트맥스 등 PC게임 개발사들이 주축이 돼 차기작의 경우 철저한 글로벌 마케팅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고 있다. 위자드소프트·이소프넷·한빛소프트 등 게임배급사들도 대규모 펀딩을 통해 ‘월드베스트’에 도전하고 있다.

 특히 판타그램이나 소프트맥스는 해외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글로벌 제작 및 배급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판타그램 이상윤 사장은 “최근 들어 게임산업은 원소스 멀티유즈 개념을 도입해 하나의 게임이 다양한 플랫폼에서 구동되는 사례가 많다”며 “월드베스트가 탄생하게 되면 그만큼 부가가치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월드베스트’를 얘기하면서 우리영화의 ‘쉬리 신화’를 종종 언급한다. 국산 게임산업이 폭발력을 얻기 위해서는 ‘쉬리’에 버금가는 작품이 게임에서도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게임업계로 사람과 돈이 몰리고 있다. 이젠 ‘월드베스트’ 명단에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낯익은 문장을 올려야 할 때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