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 그래, 우리는 남이다.’
e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는 LG그룹을 빗대서 하는 말이다. 최근 LG그룹 내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관계사간 인프라를 활용해 e비즈니스의 효과를 극대화 하고자 하는 삼성· SK그룹의 그것과 너무 판이하다.
LG는 소위 그룹차원의 e비즈니스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벌이는 e비즈니스에서도 단순히 주도권 다툼이 아닌 ‘관계사에 대한 고려’가 아예 없다.
지난해 하반기 그룹 차원의 e비즈니스로는 유일하게 추진된 통합마일리지 서비스가 단적인 예. LG텔레콤은 당시 그룹 내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들이 모여 만든 협의체에서 제외될 뻔한 수모(?)를 당해야 했다. 사업이 주도권을 쥔 LG캐피탈이 향후 m커머스를 고려할 경우 무선망이 필수지만 시장 지배력이 떨어지는 LG텔레콤을 포함했을 경우 행보가 오히려 좁아질 수 있다고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이는 SK텔레콤과 관계를 염두에 둔 반응이었다.
그룹 영향권에서 오래 전부터 벗어나 있는 LG칼텍스정유는 지금까지 오프라인 사업으로 벌여온 ‘보너스카드’ 사업을 온라인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LG캐피탈이 얼마 전 시작한 통합마일리지 서비스(myLG포인트)와 충돌이 불가피하다.
B2B도 예외가 아니다. LG 관계사 중 LG상사·LGEDS시스템이 데이콤 등 외부 기업과 컨소시엄을 결성해 만든 e마켓 지티웹코리아를 이용하고 있는 기업은 아직까지 없다. 지티웹코리아 설립 이전부터 MRO사업을 벌여온 LG유통은 지티웹코리아에 자본 투자한 삼양사를 고객사로 끌어들였다. 얼마 전 플랜트 분야를 중심으로 유휴자산 처리 전문 e마켓을 설립한 LG건설 역시 지티웹코리아의 온라인 비딩 사업과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최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4개 기업으로 나뉜 LG화학도 자체 MRO e마켓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장비와 서비스의 시너지 효과를 올린다고 강조한 통신분야도 마찬가지다. 시장에서 큰 격차로 밀려난 LG텔레콤에 대해 대주주인 LG전자는 ‘LG텔레콤이 오히려 장비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스스로 자구책을 찾지 못하면 무조건 매각한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시장의 지배적 지위를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무선네트워크와 기타 관계사의 인프라를 활용한 마케팅을 고려하면 쉬운 결단은 아닐 듯 한데 그룹에서조차 이렇다할 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LG텔레콤과 공조체제를 형성해온 데이콤 역시 독자 생존전략을 찾고 있다.
LG 관계사간 이런 분위기에 대해 업계에서는 그룹 해체의 수순으로 보고 있다. 특히 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변신을 서두르는 점을 주목한다. 계열사 한 관계자는 “타 그룹사들이 지주회사법에 따른 세금부담 등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어 그룹의 태도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며 “구씨와 허씨간 지분 정리에 따른 계열사 교통정리가 진행된다는 항간의 소문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고 추론했다.
외자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LG유통의 경우 구씨와 허씨가 주도하고 있는 LG전자와 LG화학의 지분이 반반인 기업이다. 그룹에서는 외자 유치시 어느 쪽 지분을 매각할 것인지 공식 밝히지 않고 있지만 관계자들은 LG전자의 지분 매각을 유력하게 점치고 있다. 즉 지주회사로 전환시 LG유통은 LG화학쪽으로 묶인다는 것이다.
다른 관계자는 “구조본을 중심으로 사업을 조정하고 있는 그룹들도 계열사에 대한 조정과 통제가 예전같지 않지만 지주회사 변신을 서두르고 있는 경영진의 입장에 따라 ‘그룹 해체’ 속도가 더 빠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LG그룹은 오는 2002년까지 전자와 화학을 양대 지주회사를 산하 계열사로 묶고, 다시 두 지주회사의 지분을 소유한 상위 지주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