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벤처업계 자금난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벤처 프라이머리CBO(발행시장채권담보부증권) 제도가 주간사와 신용평가사들의 구태의연한 기업평가모델 적용으로 인터넷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받고 있다는 지적을 높다. 지난 1년여 동안 지속되고 있는 자본경색으로 벤처 프라이머리CBO에 한껏 기대를 가졌던 인터넷기업들의 실망과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왜 CBO인가=당초 재정경제부가 기술신용보증기금을 통해 이 제도를 도입키로 하자 이를 가장 환영한 곳은 인터넷기업들이었다. 이들은 당시 투자가들이 등을 돌린 데다 담보 능력이 떨어져 자금 조달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절박한 상황이었다. CBO는 사채발행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전환사채(CB) 발행 형태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이었다.
◇등돌리는 CBO=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면서 이 같은 기대는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동양종금·대신증권·대우증권 등 주간사들과 신청기업에 대한 1차 평가를 실시하는 신용평가회사들이 일반 하드웨어기업과 소프트웨어기업 및 인터넷기업 등에게 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평가 결과는 매출 등 실적이 높은 일반 하드웨어 제조업체에 유리하게 돌아가 인터넷기업들이 줄줄이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1차 벤처 프라이머리CBO 대상풀로 선정된 175개 기업 가운데 일부 인터넷기업들 대부분이 물적담보가 가능한 인프라기업들이어서 순수 닷컴기업들에는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간사의 명분=벤처 프라이머리CBO 역시 CB 형태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기업의 신용·자금 상황·안정성·성장성 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CB 발행에 따르는 리스크를 정부가 보증하는 것이 이 제도의 핵심이라 당연히 재무구조나 실적이 우량한 기업에 우선 지원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재무구조가 열악하고 수익모델이 취약한 인터넷기업들로서는 방법이 없는 셈이다. 그러나 닷컴기업을 일반기업과 같은 잣대로 봐서는 안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금룡 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시장선점효과가 크고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인터넷 비즈니스를 일반 비즈니스와 단순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퇴색하는 CBO=정부가 벤처 프라이머리CBO제도를 도입하게 된 근본 원인은 민간 자본시장이 1년 이상 얼어붙은 상황에서 더 이상 벤처기업을 방치한다면 국가적으로 더 큰 손실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 출발했다. 특히 벤처캐피털 등 민간자본이 특정 분야로 쏠리는 상황에서 벤처업계 전반의 자금난을 덜어주자는 취지도 담고 있다. 따라서 다소 불합리한 평가모델 적용과 표면적인 실적 위주의 대상기업 선정으로 소외받는 업종이 생긴다면 이 제도의 당초 취지가 크게 퇴색하리라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대안은 없나=무엇보다 정부·기술신보·주간사·신평사 등 벤처 프라이머리CBO제도를 운영하는 주체들의 닷컴비즈니스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한결같은 지적이다. ‘현재가치’보다 ‘미래가치’가, ‘계량가치’보다 ‘비계량가치’가 더 중시되는 벤처와 닷컴비즈니스의 속성을 살려 새로운 벨류에이션 모델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일회성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될 제도라면 이제부터라도 대상기업 선정단계에서부터 다양한 전문가풀을 확보, 업종별 특성을 충분히 살려 기업을 평가할 수 있는 작업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