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전자상권>유통채널 다양화...총성없는 전쟁

 전국 전자상권 지도가 달라지고 있다. 대도시에 집중됐던 전자제품 상권이 점차 위성도시로 분산되고 상권 내부에서도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집단 전자상가와 할인점·양판점·대리점간에 총성없는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상권분산의 이면에는 유통채널의 다양화가 자리잡고 있다. 제조업체의 대리점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전자유통이 양판점·할인점 등으로 다핵화되면서 이들 유통망을 중심으로 제2, 제3의 전자유통 상권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변 유통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동안 각 지역마다 전자유통의 기지 역할을 해왔던 집단 전자상가에는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바야흐로 변혁의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전자 상권의 변화는 최대 격전지인 수도권에서 먼저 드러난다.

 불과 4년전만 하더라도 수도권의 전자 상권은 용산 전자단지와 가전업체들의 대리점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국제전자센터가 설립되고 테크노마트·일이삼전자타운 등이 잇따라 설립되면서 수도권의 전자상권은 중부의 용산 전자단지를 중심으로 강서·강남·강동 등의 상권으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나아가 분당과 일산·부천 등 수도권 주변에 신도시가 속속 들어서면서 이들 지역에도 전자제품 수요증가에 힘입어 각각 독자적인 상권이 형성됐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전자상권이 주변도시로 분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전국의 다른 상권도 마찬가지다. 부산의 전자상가를 비롯해 대구의 전자관·광주의 금호전자월드 등이 자리잡고 있지만 이들 집단 전자상가가 갖는 시장 주도력은 점차 약화돼 가고 있는 상황이다.

 상권 분화의 원인으로는 양판점과 할인점의 약진을 들 수 있다. 할인점은 전문성을 놓고 본다면 가전대리점이나 전자전문 상가와는 비교가 안되지만 의류나 식품·공산품을 싸게 파는 데서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집객력 때문에 상권에서 큰 흡인력을 발휘한다.

 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할인점 전체 시장규모는 160개 할인점에 매출 10조2000억원이며 올해엔 200개 할인점에 매출 13조2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전체 매출 가운데 전자제품이 차지하는 비율도 이미 13%대를 넘어섰으며 삼성테스코홈플러스의 경우는 17%선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할인점이 가전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진 것이다.

 하이마트나 전자랜드21로 대표되는 양판점의 위세도 만만치 않다. 이들 양판점은 처음 출점때부터 지역밀착형 출점전략에 바탕을 두어 시 단위의 상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하이마트는 현재 전국에 230여개의 지점을 두고 있으며 연말까지 20여개의 지점을 추가로 오픈할 계획이다. 또 전자랜드21은 54개에서 연말까지 70개로 늘릴 계획이다.

 이들 양판점은 군집(클러스터) 전략 또는 모점·자점 형태의 출점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구매력이 있는 도시에는 집중적으로 여러 점포를 두는 한편 중도시 상권에 큼지막한 모점을 두고 하위 도시에는 자점형태의 점포를 운영해 유통망을 계열화하는 방법이다.

 할인점과 양판점들이 갖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 구매력(바잉파워)이다. 수백개의 지점을 두고 있지만 본사에서 일괄 구매하므로 전자전문 상가와 가격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양판점과 할인점은 전국 지점 동일가격을 모토로 한다. 양판점과 할인점을 중심으로 한 소상권이 득세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가전부문은 이렇듯 분산되고 신유통 채널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지만 컴퓨터 부문은 여전히 대리점과 집단전자상가가 우세하다. 규격화된 가전제품과는 달리 종류가 천차만별이고 기술지원·AS 등 사후관리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들어 전자랜드21과 하이마트, 그리고 까르푸·삼성테스코홈플러스 등이 컴퓨터 유통을 강화하고 있어 앞으로 컴퓨터 유통부문에서도 변화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적으로 상권쟁탈전이 치열한 곳은 수도권 외에 부산과 광주, 천안 등으로 압축된다.

 부산권은 할인점만 20여개에 이르며 하이마트와 전자랜드21도 각각 18개와 5개로 수도권 못지않은 할인점과 양판점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봉희 전자랜드21 제3지부장은 “수시로 경쟁업체의 가격을 체크하고 판매가에 반영하는 등 수도권 못지않게 상권 쟁탈전이 심하다”고 말한다.

 광주의 경우 백화점 ‘빅3’가 모두 진출해 있고 이마트와 마그넷 등 16개의 중·소형 할인점들도 가전제품을 취급해 전자전문 양판점 및 가전업체 대리점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광주에는 현재 하이마트 11개, 전자랜드21 2개, 삼성 디지털프라자 37개, LG하이프라자 5개 등이 포진해 있다. 하지만 다른 지역과는 달리 할인점은 약세인 편이다.

 천안은 수도권으로 출퇴근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가전 유통업체들도 경쟁적으로 출점해 양보없는 격전을 치르고 있다. 천안지역 시내를 중심으로 반경 2㎞이내에 이마트·까르푸 등 5개 할인점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으며 LG하이프라자와 삼성 리빙플라자·전자랜드21·하이마트 등도 일렬 종대로 포진해 있다. 인구가 많은 대전보다 더 치열한 상황이다.

 이처럼 전국의 전자상가는 안으로는 경기부진으로 인한 출혈경쟁에 시달리고 밖으로는 신유통 업체들의 사활을 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때는 늦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믿고 찾을 수 있도록 신뢰도를 높이고 백화점처럼 편안한 쇼핑공간으로 환경을 개선한다면 전자상가의 앞날은 밝다. 전문성 측면에서 한수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 전자상가에 대한 쇠퇴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전자전문점 설립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바로 이같은 사실을 반증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용산 민자역사내에 들어설 예정인 전자전문점은 총 3만평 규모로 용산 일대 전자단지의 판도를 바꾸어 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전자전문점 분양에 문제가 있다는 민원이 제기됨에 따라 사업계획이 변경될 가능성도 있지만 당초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용산 전자상가는 재편이 불가피하다.

 특히 이와는 별도로 서울시가 서울역에서 한강대교에 이르는 100만여평의 용산 부도심권 개발계획을 확정함에 따라 앞으로 2011년까지 용산 일대에 국제첨단업무시설이 들어선 80층 규모의 고층빌딩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용산 전자단지는 국제 전자상가로서의 면모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부천에는 이렇다할 집단 전자상가가 없었으나 오는 3·4분기안에 8층 규모의 대림테크노메카가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상가는 주변의 까르푸 중동점과 LG백화점·하이마트 등과 함께 중동 신도시의 전자제품 수요를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대전에도 테크노월드가 세워져 기존의 둔산 전자타운과 함께 신시가지의 전자제품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영하 yh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