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전자상권>급변하는 전자 유통환경

전자제품 유통업계 종사자라면 지난 98년 여름을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다국적 기업인 월마트가 ‘마크로’라는 할인점으로 국내 시장에 진출하면서 고객 유인 차원에서 일부 국산 가전제품을 예상밖의 초저가에 판매하고 나서자 경쟁업체인 이마트가 이에 맞대응해 가격인하 경쟁을 펼쳐 유통업계에서는 가격체계 붕괴에 대한 우려가 팽배했었다. 물론 소비자는 조금이라도 싸게 살 수 있어 좋았지만 그동안 국내 가전 유통시장을 주도해온 일선 가전대리점들은 고래 싸움에 등터진 새우꼴이 됐다.

 그로부터 벌써 3년 가량의 세월이 지난 지금, 양판점과 할인점은 뜨는 반면 가전사들의 전속대리점 체제는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 싼 가격과 다양한 품목을 무기로 호황을 누렸던 집단 전자상가들도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매출부진과 신유통점의 도전이라는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폭발적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터넷은 유통업계에도 혁명 수준의 변화를 초래해 전자제품 유통 환경을 바꿔놓고 있다.

 ◇대리점의 약세와 양판점의 부상=전자제품 유통업계가 급변하고 있다. 가전 유통업계는 IMF 이전만 하더라도 LG전자·삼성전자 등 제조업체의 대리점이 강세를 보였었다. 숫자로보나 매출로보나 대리점이 우위를 차지했었다. 90년대 들어 가전 제조업체들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유통점 늘리기 정책을 펼치면서 한때는 가전 3사의 대리점이 무려 5000여개에 달했을 정도다. 매출 역시 전체의 60% 이상을 대리점이 차지했었다.

 하지만 IMF를 계기로 시작된 덩치줄이기는 유통업계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해 기준으로 대리점 숫자는 각 사마다 1000여개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매출비중 역시 50% 이하로 줄어들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유통점 수는 각각 리빙플라자와 LG플라자를 포함해 1000여개에 달한다.

 이렇듯 대리점이 줄어든 것은 자연발생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실 대리점 정리’를 내건 가전 업체들의 구조조정 노력도 한몫을 했다.

 대리점 체제의 약세는 곧바로 양판점의 득세를 의미한다. 대우전자의 경우 대리점인 대우가전마트 가운데 상당수를 종합 양판점으로 전환했다.

 하이마트와 전자랜드21로 대표되는 국내 전자전문 양판점은 대략 6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지난해 전체 가전유통 시장에서 1조6500억원을 기록, 약 28%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아남전자 등 제조업체의 대리점들이 50% 가량을, 나머지 22%를 할인점과 백화점·온라인 쇼핑몰 등이 점유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가전 제조업체들은 대리점의 매출비중이 아직은 60% 수준이라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백화점·할인점의 매출 중 상당 부분이 대리점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같은 유통구조의 변화는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현재 전국에 230개의 유통망을 갖고 있는 하이마트가 연말까지 20개의 지점을 더 늘릴 예정이고 54개의 지점을 둔 전자랜드21 역시 연말까지 16개의 지점을 늘리는 등 세력 확장을 꾀하고 있다.

 하이마트의 올해 매출목표는 1조6500억원, 전자랜드21의 목표액은 7000억원. 따라서 올해 가전시장 규모를 8조원으로 높게 책정해도 양판점의 시장점유율은 30%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할인점의 가전제품 취급 두드러져=지난 98년 여름, 월마트의 마크로와 신세계의 이마트가 가전제품을 놓고 치열한 가격경쟁을 벌인 이래 할인점들의 가전제품 취급률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이마트의 경우 지난 95년에는 가전제품 구매(MD)비중이 7.9%였으나 해를 거듭하면서 점차 늘어나 지난해에는 12.7%로 높아졌다. 이마트의 가전MD 비중은 다른 할인점에 비해 낮지만 점포 숫자가 전체 할인점 200개(올 연말 예상치) 가운데 43개로 가장 많아 가전 유통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일 크다.

 삼성 테스코홈플러스는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7개의 점포를 보유해 규모는 작지만 가전 비율이 전체 매출의 17%대로 가장 높으며 20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는 까르푸는 15%선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할인점에서의 가전제품 판매가 점차 안정권으로 접어들자 할인점들은 자체브랜드(PB) 상품을 도입해 유통의 헤게모니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이마트의 PB TV인 ‘씨네마플러스’는 지난 4월까지 2만5000여대나 팔렸다.

 할인점이 중저가 제품 판매에 주력하는 반면 대리점과 백화점은 각각 소형화·고급화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방향으로 영업방침을 선회하고 있다. 대리점들은 주로 주택가에 위치해 있어 고품질의 서비스와 DM·전단지 등을 통한 지역밀착형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으며, 백화점은 고급형·수입 제품을 주로 취급해 마진율 높이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편 컴퓨터 업종은 아직까지는 대리점과 집단 전자상가가 절대 우위에 있다. 하지만 이 부문 역시 전자랜드21과 까르푸 등이 PC를 적극 취급하고 있고 하이마트 역시 PC유통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으므로 어느 정도의 시장 잠식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온라인 쇼핑몰과 TV홈쇼핑의 공세=전자상가의 상인들은 양판점과 할인점도 힘든 상대지만 이보다 더 까다로운 것은 온라인 쇼핑몰이라고 말한다.

 대다수의 상인들은 이제까지 제조업체에 대해 고객신상카드 형태로 고객데이터베이스(DB)를 제공해왔는데 앞으로는 제조업체들이 이것을 인터넷을 통한 다이렉트 마케팅에 활용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인터넷 쇼핑몰 역시 유통비용을 절감한 만큼 저렴하게 판매해 상대적으로 고정비용이 높은 집단 전자상가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들은 무점포의 이점을 살려 다양한 패키지 상품을 최대한 구성해 판매하고 있으며 자체 PB상품도 개발, 판매하면서 가격과 상품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편리한 안방쇼핑을 장점으로 내세우며 다달이 매출기록을 경신해가고 있는 TV홈쇼핑의 전자 제품 매출도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상품관련 정보를 판매와 병행해 제공함으로써 고객으로부터 인기가 높다.

 국내 전자유통의 메카인 용산 전자단지는 앞으로 격변의 세월을 겪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현대역사가 용산민자역사를 세우면서 총 3만여평 규모의 상가를 건립하고 여기에 전자전문점을 입점시킬 예정이어서 기존 6개 전자상가에 크나큰 타격이 예상된다. 하지만 민자역사에 전자전문점이 생기게 됨으로써 기존 상가의 잘못된 상관행과 무사안일주의는 더이상 발붙이지 못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박영하기자 yh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