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햇살이 제법 따사로워진 6월. 짜증나는 더위를 잊게 해 줄 만한 비디오는 어디 없을까.
6월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어중간한 시기인 만큼 액션대작이나 스릴러 등 냉방성 작품보다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가족영화, 예술영화, 애니메이션 등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의 뒤를 이어 ‘친구’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선물’ ‘번지점프를 하다’ ‘휴머니스트’ 등 수작으로 꼽히는 방화들이 팬들을 찾아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패자부활전’ ‘자귀모’에서 연출수업을 받은 오기환 감독의 데뷔작 ‘선물’은 ‘편지’ ‘약속’ ‘하루’ 등 두 글자 제목의 멜로물 열풍의 막차를 탄 작품.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인생을 사는 정연은 어리숙한 남편인 용기에게 정을 떼기 위해 병을 숨긴 채 일부러 악을 쓰고 바가지를 긁는다. 부부의 사소하지만 정감어린 일상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윤회라는 불교적 사상에서 모티브를 찾은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는 ‘첫눈에 반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또 웃음과 아픔을 뒤섞어가며 그 답을 찾아가는 작품이다.
풋내기 국문과 학생인 인우는 우연히 버스정류장에서 스친 태희에게 한눈에 반하지만 그 이후로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17년 후 국어교사가 된 인우는 남학생 제자인 현빈의 모습에서 태희의 자취를 발견한다.
이무영 감독의 ‘휴머니스트’는 지난 94년 박한상군의 패륜 살인사건을 소재로 제작된 작품으로 극악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전혀 뉘우침이 없는 악동 3인조의 납치극을 잔혹 코미디로 풀어낸다.
할리우드 작품도 따뜻한 인간애를 주제로 다루거나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등이 주류를 이룬다.
로버트 레드퍼드의 ‘베가번스의 전설’은 골프영웅의 좌절과 재기를 담고 있다.
미 남부도시 사바나의 스포츠영웅 주너는 지역 유지의 딸과 약혼한 사이다. 1차대전이 발발하자 전쟁에 참전한 주너는 후유증으로 골프를 포기한다. 하지만 에델로부터 시합 제의를 받고 다시 골프채를 쥔다. 골프를 소재로 다루지만 ‘틴컵’과 같은 골프영화는 아니고 단지 골프는 은유에 불과하다.
인간은 누구나 한때 자기 스윙을 잃어버리고 그것을 다시 찾는 고통과 아픔을 겪는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제이 로치 감독의 ‘미트 페어런츠’는 웃음이 적은 우리에게 전형적인 미국식 웃음을 선사한다.
남자 간호사 그렉 파커는 여자친구 팸에게 청혼하기 위해 예비 장인에게 잘 보이려 하지만 실수만 연발한다. 이 작품은 비수기인 지난해 말 미국에서 개봉돼 4주간 박스오피스 수위를 달리면서 1억4000만달러를 벌어들여 작품흥행성을 입증했다.
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각색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트래픽’은 스티븐 소더버그의 역작.
멕시코의 티후아나, 멕시코 접경도시 샌디에이고, 그리고 중서부 오하이오에서 얽혀 돌아가는 복잡한 마약 밀매 이야기를 3가지 화면 색깔과 인물로 이야기를 구분하며 한줄기로 엮어낸 수작.
거친 입자가 고스란히 비춰지는 오렌지톤의 티후아나. 하비에르 형사와 동료가 마약 밀매자를 단속하고 있다.
푸른빛이 깔린 단정하고 정결한 오하이오주. 대법관 로버트는 이제 막 대통령 직속 마약단속국장에 임명된다. 그러나 고급 사립학교에 다니는 모범생 딸이 친구들과 마약에 깊이 빠져있음을 알고 절망한다.
대사있는 배역만 100개가 넘는 이 복잡한 이야기를 소더버그 감독은 능숙한 솜씨로 정교하게 요리해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독점금지를 뜻하는 영화 ‘패스워드’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를 타깃으로 기술독점을 비꼬아 화제가 된 피터 호윗 감독의 작품.
대학을 갓 졸업한 컴도사 마일로는 세계 최고의 컴퓨터회사인 시냅스의 게리 윈스턴 회장으로부터 친구와 함께 입사 제의를 받고 고민 끝에 수락한다. 입사를 거절했던 친구는 살해당하고 의구심을 품은 마일로는 결국 회사의 엄청난 음모를 알게 된다.
애니메이션으로는 ‘구피무비-X게임 대소동’이 선보인다. 툭 튀어나온 이빨과 호기심 많은 구피는 70년이 넘도록 많은 어린이들로부터 사랑받아온 월트디즈니의 대표적인 캐릭터. 구피는 아들 맥스가 다니는 대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스케이트보드 대회를 둘러싸고 구피와 맥스의 갈등과 화해가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려진다.
액션물로는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6번째 날’이 볼 만하다.
동물의 복제가 허용된 미래, 아이들은 강아지가 죽으면 ‘리펫’사에 의뢰해 똑 같은 동물을 만들어낸다. 생전의 기억이 그대로 복제된 동물은 주인의 습관까지 기억할 정도로 과거와 똑같다. 물론 인간복제는 금지됐다. 하지만 항공조종사인 애덤 깁슨은 우연히 자신이 복제됐다는 사실을 알고 복제한 무리와 맞서 싸운다.
<신영복기자 yb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