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 재조명](6)IT 인프라는 일류...핵심기술은 삼류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가 깔린 삼보컴퓨터를 켜고 야후 포털에 접속한다. 한국통신망을 경과하지만 시스코시스템스의 라우터와 선의 시스템을 거친다. 인터넷 정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로 작성하고 HP프린터로 출력한다.

 인프라는 일류, 핵심 기술은 낙후. 한국 IT산업의 이중구조다.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IT산업은 폭발 성장했지만 그 과실의 상당 부분은 핵심 기술을 제공한 외국 업체의 몫으로 돌아갔다. 세계가 한국의 정보화 진전을 경이와 찬탄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그 화려한 외적 팽창에 숨어 있는 알맹이는 외국기술 의존 심화였다.

 국내 주요 업종의 성공 신화에는 늘 따라다니는 기술 및 부품 수입은 IT분야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특히 인터넷 이용 인구를 비롯, 광대역 통신망, PC보급 확산 등이 급격히 이뤄진 지난해의 경우 외국계 장비 및 소프트웨어 업체는 사상 초유의 매출 및 이익증가율을 기록한 것으로 밝혀졌다.

 ISP 수가 늘어날수록 시스코나 선·HP·컴팩이 실속을 챙겼고 공공 민간 가릴 것 없이 정보화 투자가 확대될수록 IBM·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의 배가 두둑해졌다. 무역흑자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IT수출에서도 이동전화 단말기와 반도체, PC가 선전하지만 정작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소프트웨어는 수입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이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CDMA단말기조차 국산화율은 65% 가량(정통부 추정)에 그칠 정도다. 이 수치마저 핵심칩은 거의 전량 퀄컴에 의존하고 있고 단말기 한 대를 팔 때마다 꼬박꼬박 로열티를 물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한국의 정보화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외국 기술과 장비를 들여다 겉만 씌운 것이라는 이야기다. 21세기 IT기술의 총아인 광대역과 VoIP, 스위칭, 패키지 소프트웨어 등에서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IT핵심 기술은 전세계적으로 몇몇 대형업체가 독점하고 있어 이같은 상황은 반드시 한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그럼에도 핵심기술을 동반하지 못한 정보화는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없어 정보인프라는 어느 정도 본궤도에 오른 이제부터라도 기초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우기 한국이 세계 최고의 광대역 인프라를 확보했다고 자신하는 것은 좋지만 기술면에서도 세계 초일류라고 떠드는 것은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정부와 민간의 대대적 투자 덕분에 일정부분 인프라를 갖추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을 기반으로 이를 국가 경쟁력화하는 과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각종 통계 수치상으로는 한국의 IT인프라는 어느 정도 인정할 만하다. 전세계 50개국을 대상으로 각국의 정보화 수준을 측정한 결과에 의하면 종합지수 순위 1위는 미국이고 한국은 22위였다(정통부 2000년 자료). 아시아권에서는 싱가포르가 유일하게 10위권 내(6위)에 들었으며 97년대비 4단계를 올랐다. 일본과 홍콩은 각각 12, 13위, 대만이 20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컴퓨터부문 23위, 통신부문 11위, 방송부문 21위, 인터넷부문은 27위를 기록했다.

 이는 국제 연감자료가 99년 집계여서 만약 2000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한국의 각 부문별 랭킹은 크게 올랐을 것으로 보인다.

 정보화지수 조사 역시 비슷한 결과를 보인다. 우리나라와 세계 주요 국가간의 정보화지수 격차를 보면 97년에 미국이 우리 나라의 3.3배, 스웨덴 2.8배, 캐나다 2.3배, 싱가포르 2.2배, 호주 2.5배, 일본 1.8배, 독일 1.5배, 대만이 1.1배 수준이었으나 98년에는 미국이 우리나라의 2.5배, 스웨덴 2.3배, 캐나다와 싱가포르·호주는 각각 1.8배, 일본 1.5배, 독일 1.3배, 대만이 1.2배 수준으로 나타나 대만을 제외한 선진국과의 수준과 격차가 다소 좁혀지고 있다.

 정보화지수의 구성항목 중 중요도가 큰 항목인 PC 보급대수에서 한국과의 격차는 98년에 미국 2.9배, 캐나다 2.1배, 스웨덴 2.3배 등으로 나타났다. 이동전화가입자 수에 의한 우리나라 정보화 수준의 경우 95∼98년 성장률이 102%로 비교 대상국 중 가장 높은 성장과 상위권의 순위를 보이고 있다.

 한국과의 격차는 98년 스웨덴이 1.5배, 싱가포르가 1.1배 등으로 높게 나타났으나 매년 그 격차를 줄이고 있다. 그리고 한국이 미국과 캐나다를 각각 약 0.8배, 0.6배로 추월, 그 격차를 점차 벌리고 있는 추세다. 단 대만은 한국과의 격차를 점차 줄이고 있는 추세다.

 인터넷호스트 수에 의한 우리나라 정보화 수준은 98년 미국과 27.9배, 캐나다와 9.2배, 스웨덴과 10.7배, 그리고 대만과 3.5배 수준이며 매년 그 격차가 대만을 제외하고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또한 호스트 수에 대한 기존의 격차가 큼에도 불 구하고 인터넷도메인 수와 인터넷이용자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그 수요가 높은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적으로는 한국의 인프라 수준은 세계 22위지만 상위권 국가와의 격차가 점 차 줄어드는 추세다.

 이를 입증하듯 정부는 다양한 인프라 확충 청사진을 추진하고 있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정보통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정보통신 인프라를 2005년까지 확대·구축하기 위해 초고속정보통신망을 구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 99년 말까지 광케이블 기간망 8만5036㎞를 구축했고 전국 107개권 지역까지 고속·대용량의 광케이블 기간망을 포설, 2000년 7월 현재 약 187만 가구에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연말까지 37개 지역에 광케이블 망을 추가로 구축, 전국 144개 지역으로 기간망을 확대하고 초고속교환설비(ATM)를 확충하며 이와 함께 200만 이상의 가구에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해 모든 국민이 정보서비스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어 2003년 이후 현재의 인터넷을 차세대 인터넷으로 전환하기 위해 차세대 인터넷 망 구축을 위한 기술개발에 착수하고 현재보다 1000배 이상 빠른 테라(Tera)급 접속장비, 광 인터넷, 그리고 혁신적인 응용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남은 문제는 IT 각 부문별 기술 수준을 정확히 평가하고 우리의 취약점과 강점을 가려내 이에 적합한 종합 대책을 세우는 일이다. 계획이 마련됐으면 정부와 민간이 한덩어리가 돼 이를 실천해야 한다. IT산업 재조명은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