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등록(일명 백도어리스팅)을 시도한 6개사에 대한 금감원의 시정 명령을 놓고 증시뿐만 아니라 벤처캐피털을 비롯한 벤처업계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31일 벤처캐피털업계는 이번 금감원의 조치에 대해 그동안 만연했던 벤처업계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에 대한 적절한 경고였다며 상당부분 긍정하면서도 자칫 인수합병(M&A)을 통해 회사의 발전을 도모했던 기업들까지도 선의의 피해자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벤처캐피털업계의 이같은 우려는 코스닥시장 등록을 통한 투자회수(exit) 기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주요 대안중 하나로 떠올랐던 M&A 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사모M&A펀드 등록으로 사실상 적대적 M&A까지 허용하며 정부차원에서 M&A시장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진 금감원의 이번 조치는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도 이견이 제기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이전에 우회등록을 통해 코스닥시장에 올랐던 리타워텍이나 바른손 등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증시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우회등록의 제한은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금감원의 제동은 피인수기업이 현재의 수익성과 향후 성장성에서 적정한 가치로 우회등록되는가를 감시하겠다는 것으로 기업의 투명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것이다.
코스닥기업이 장외기업을 인수, 합병, 주식교환을 통해 우회등록시킬 경우 등록되는 장외기업 대주주는 순식간에 수백억원의 자본차익(캐피털게인)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기존주주들은 피인수(우회등록)기업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합병기업이 부실화될 경우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기존 등록기업들이 코스닥위원회의 심사절차를 거쳐 투자자들을 만나는 반면 우회등록기업들은 어떠한 사전 검증도 거치지 않고 상장되는 효과를 갖게 된다. 이 역시 정식 절차를 밟아 등록한 기업과 비교할 때 형평성에 어긋난 것이며 정보에 어두운 소액 투자자들에게 너무 많은 ‘위험’을 전가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
최성호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조치로 M&A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긍정적인 M&A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규제를 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며 “우회등록을 막는 조치가 아닌, 우회등록기업이 과연 적정한 가치로 상장되는가를 감시하는 것은 투자자보호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고 말했다.
벤처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금감원의 조치를 계기로 장외기업의 가치평가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 마련은 물론, 코스닥시장 등록기업 평가 시스템의 확립을 통한 강력한 퇴출시스템 마련을 주장하고 있다. 코스닥 시장 퇴출 활성화를 통해 껍데기뿐인 회사들을 정리, 부당이익을 목적으로 한 백도어리스팅을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