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인터넷과 디지털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흔히 사이버 문화의 시대라 표현된다.
전세계적으로 5억명에 달하는 네티즌은 디지털이 만들어내는 사이버 공간에서 다양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문화와 엔터테인먼트를 향유하고 있다.
특히 게임은 상호작용성(interaction)과 스포츠적인 경쟁(competition)이라는 요소를 내세워 사이버 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더욱이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먼저 배틀넷이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게임을 통해 각종 경기를 벌이는 ‘e스포츠’가 탄생했다.
국내에서 e스포츠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98년경. PC방의 열기와 함께 불멸의 히트작인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하면서 배틀넷을 통해 사람들끼리 대결하는 e스포츠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이어 배틀탑을 비롯한 게임리그 전문업체들이 속속 등장함으로써 e스포츠는 비즈니스 차원으로 확대됐다.
2000년에는 e스포츠의 꽃인 프로게임리그까지 발족했다. 프로게임리그의 원년이라 할 수 있는 지난해 KIGL·PKO·KGL 등과 같은 전국 규모의 프로게임리그가 잇따라 발족되면서 e스포츠는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프로게임리그의 발족은 곧 프로게임단의 창단으로 이어졌으며 프로야구 선수나 프로농구 선수처럼 게임을 직업으로 하는 프로게이머도 200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배틀탑이 주관하는 KIGL과 PKO 등 양대 리그는 프로축구, 야구, 농구 못지 않은 인기 있는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
프로게임리그의 인기를 반영하듯 게임리그를 중계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후발주자인 온게임넷, 대교방송, 경인방송 등은 이른바 ‘게임특수’를 누리며 많은 시청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게임 중계는 인터넷방송들에도 성인방송에 버금가는 효자 아이템에 속한다.
케이블TV는 물론 지상파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게임리그를 중계함으로써 스타 게이머들이 속속 탄생했다. 지금도 테란의 왕자 임요환, 피파의 거장 이지훈, 스타크래프트의 여왕 김인경과 같은 프로게이머들은 수백명의 팬들을 몰고 다니며 인기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정부도 프로게임리그의 발전을 위해 21세기프로게임협회(회장 김영만)를 발족했으며 문화관광부·정보통신부·산업자원부 등 관련부처에서도 장관배 게임대회를 유치하는 등 게임리그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삼성전자의 주도로 전세계 17개국 200여명의 게이머들이 용인에 모여 자국의 명예를 걸고 시합을 벌인 ‘월드사이버게임챌린지’가 개최돼 한국이 e스포츠의 종주국임을 전세계에 알렸다. 올해 12월에는 ‘e스포츠 올림픽’을 기치로 전세계 30여개국의 ‘게임꾼’들이 참여하는 ‘월드사이버게임즈(위원장 김한길·윤종용)’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돼 e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아마추어 스포츠인들의 제전인 제82회 전국체전에 맞춰 ‘제1회 사이버 전국체전’까지 열릴 예정이다. 전국체전의 사전행사로 오는 10월 충남 천안에서 열릴 이 대회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와 대한체육회(KSC)가 공식후원하며 앞으로 매년 오프라인 스포츠 행사와 함께 열릴 예정이어서 ‘e스포츠 붐’을 전국으로 확대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올해는 e스포츠의 뜨거운 열기가 비즈니스 차원으로 확대·재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동안 마니아층에 머물렀던 e스포츠의 저변이 일반인으로까지 확대됨으로써 국민적인 스포츠로 자리를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에서는 PC게임뿐만 아니라 아케이드(오락실용)·가정용·온라인 게임은 물론 웹게임을 이용한 다양한 형태의 게임대회를 기획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게임물유통협회(회장 우인회)는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를 기반으로 격투·축구·카레이싱 등의 실력을 겨룰 수 있는 ‘코비토’리그를 진행중이며 코스닥등록 아케이드업체인 이오리스(대표 전주영)는 격투기 아케이드 게임기인 ‘킹오브파이터’를 종목으로 한 ‘이오리스배 킹오브파이터 천왕전’을 벌여 화제를 모았다. 이밖에 아케이드게임 마케팅업체인 게임장닷컴(대표 고상석) 등이 오는 9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국 규모의 ‘아케이드 게임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국내 게임개발 업체들이 자체개발한 게임을 종목으로 한 게임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좀더 다양한 e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이달초 판타그램(대표 이상윤)이 자사의 전략 시뮬레이션게임인 ‘킹덤언더파이어’를 종목으로 한 게임대회를 개최했으며 동서게임채널(삼국지천명2), 조이맥스(아트록스), 재미시스템(액시스), CCR(포트리스2블루) 등이 잇따라 게임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처럼 e스포츠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 골프 등과 같은 오프라인 스포츠처럼 확고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특히 프로게임리그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물밑 다툼을 펼치고 있는 프로게임단, 리그사, 방송사 등의 마찰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프로게임단협의회를 발족한 프로게임단들은 프로야구의 모델을 응용해 게임리그를 주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그동안 e스포츠의 텃밭을 일궈 온 게임 리그사들은 프로권투식의 모델을 내세우며 프로모션 업체들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경인방송, 온게임넷, SBS 등 방송사들도 그동안 게임리그 운영사의 콘텐츠를 중계해오던 방식에서 탈피해 게임단을 직접 모집, 리그를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주도권 다툼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e스포츠 지원에 나선 정부부처를 등에 업은 관련단체들이 난립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문화관광부는 한국프로게임협회, 산업자원부는 게임연맹 등을 산하단체로 두고 유사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프로게임단협의회도 독자적인 사단법인 설립을 모색하고 있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자칫하면 한국이 종주국인 e스포츠가 세계를 향한 출항도 하지 못하고 자중지란으로 좌초할 수 있다는 우려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리그운영사, 게임단, 방송사들이 지엽적인 문제에 얽매이지 말고 게임산업 육성이라는 거시적이고도 장기적인 비전아래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얼마되지 않는 이익에 집착하는 ‘소탐대실’ 때문에 배가 산 위로 올라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최승철기자 rockit@etnews.co.kr 김태훈기자 taeh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