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제어 에어컨` 소비자 외면

  

 여름철 집중되는 냉방 전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원격제어 에어컨’이 소비자들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원격제어 에어컨이란 제어 전용 페이저(삐삐)를 통해 한국전력이 에어컨 전원을 켜거나 끌 수 있고 실내 설정온도도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품이다. 특히 한국전력이 대당 42만원에서 104만원까지 보조금을 지원해 준다.

 소비자가 이처럼 일반 유통가격에 비해 에어컨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데다 올해부터 정부가 에너지 소비억제를 위해 전력 요금누진제를 적용함에도 불구하고 원격제어 에어컨 판매량은 당초 계획대비 40%에 그치고 있는 형편이다.

 이같은 상황은 소비자가 원격제어 에어컨의 구매를 기피하는 등 정부의 에너지 관리 정책에 비협조적인 것이 아니라 원격제어 에어컨 보급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황=산업자원부는 올해 여름철 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판단, 여름철 최대 전력수요는 지난해보다 6% 증가한 4346만5000㎾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전력은 무선으로 원격제어가 가능토록 페이저를 내장한 패키지 에어컨 3000대(6개 모델)를 공급키로 하고 만도공조, 센추리, 캐리어, LG전자 등을 통해 지난 한달간 신청·접수를 받았다.  

 한국전력은 특히 보급확대를 위해 제조업체에 소비용량 1㎾당 20만원씩 42만∼104만원까지 지원해 줌으로써 소비자들이 일반 제품보다 17∼23% 가량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신청접수를 마감한 결과 한전으로부터 각각 배정받은 1000대 물량 가운데 만도공조는 300대(30%), 센추리 508대(51%), 캐리어 400대(40%) 등 총 1208대를 판매한 것으로 집계돼 3000대중 40%만이 팔렸다.

 

 ◇문제점=원격제어 에어컨의 소비자 구매가 극도로 부진한 것은 소비자들의 ‘에너지소비 불감증’보다는 한국전력의 모델 선정 시점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 공급하는 원격제어 에어컨은 이미 지난해 상반기에 선정된 모델들이다.

 즉 소비자들은 1년전 구모델이라는 점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제품 구매를 희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올해 에어컨 업체들이 너도 나도 초절전형 신모델을 출시하면서 상대적으로 가격메리트가 희석된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또 한국전력이 원격제어 에어컨를 공급한다는 공고를 냈지만 신청접수창구인 만도공조, 센추리, 캐리어 등은 문의가 거의 없다고 밝히고 있어 홍보전략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전력도 원격제어 에어컨을 100만대까지 보급해 성수기때 전력난을 극복한다는 방침이지만 계획된 공급물량은 지난해 3600대에서 올해 3000대로 600여대를 오히려 줄임으로써 추진의지마저 의심케 하고 있다.

 ◇해결방안=원격제어 에어컨의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서 한국전력이 가격적인 측면으로만 접근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내 냉방 유지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제어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사용하는데 불편이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다양한 홍보전략 수립이 절실하다.

 또 주력제품을 차기연도 신모델로 배정, 공급함으로써 원격제어 에어컨은 구모델이라는 인식을 벗어나야 한다.

 중견 에어컨 전문업체는 기술력이 우수하더라도 브랜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메리트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대기업들은 한국전력이 지난 99년부터 공급해 온 원격제어 에어컨 물량이 전체 에어컨 시장의 3% 내외여서 이러한 사업에 적극 참여하는 데 난색을 표명해 왔다.

 따라서 미국 등 선진국에 널리 보급된 에너지 절약시스템인 원격제어 에어컨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소비자, 업체들의 협력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