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로 에어컨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날씨만 도와준다면 올해 에어컨 판매는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다.
전반적인 경기침체 여파로 대부분의 가전 제품 수요가 위축된 점을 감안해 볼 때 다소 성급한 예측일지 몰라도 올해 최대 효자 품목은 에어컨이 될 것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이미 지난 97년에 금액기준으로 TV와 냉장고를 제치고 내수 판매 1위를 기록했던 에어컨이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올해 3년 연속 1위를 고수해온 냉장고를 제치고 내수시장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품목으로 재등극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가전업체들은 앞으로 안정된 내수를 기반으로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전략을 펼쳐 에어컨을 ‘월드와이드’ 품목으로 집중 육성해 나갈 계획이다.
◇지구촌 더위를 식혀라=‘OO이 하나씩 팔릴 때마다 세계의 여름이 조금씩 시원해집니다.’
국내 굴지의 전자업체인 L사의 에어컨 광고 카피다. 이왕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에어컨을 구입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를 은근히 권유하는 이 광고 카피에서 알 수 있듯이 국산 에어컨은 이미 지구촌 더위를 식히는 데 한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에어컨이 내수 시장을 석권한 데 이어 어느덧 수출 유망 품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LG전자·삼성전자·대우전자 등 가전 3사를 비롯해 만도공조·센추리·캐리어 등 중견 에어컨업체들에 따르면 90년대 후반기부터 국산 에어컨 수출이 가파른 증가세를 나타내 우리나라의 가전 수출 주력품목이 영상기기에서 냉동공조기기로 바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실제 국산 에어컨 수출규모는 99년 사상 처음으로 15억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0억달러를 넘어섰으며 올해도 25억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세계 에어컨 시장규모가 이 기간에 4000만대를 전후로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에어컨 수출 증가율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국산 에어컨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은 기존 제품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시키는 등 신기술 및 신제품 개발에 적극 투자하고 중동·중국·중남미 등 신규 시장 개척을 통해 수출지역을 다변화한 결과로 분석된다.
특히 LG전자는 지난해 전세계 에어컨 업체 중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에어컨을 생산·판매한 것으로 공식 집계돼 국산 에어컨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일본의 유력 경제연구소인 후지경제연구소는 최신 자료를 통해 LG전자가 작년 한해 동안 410만대를 생산·판매해 일본의 마쓰시타(338만대), 미국의 프리지데어(315만대)·월풀(256만대)·캐리어(250만대) 등 쟁쟁한 경쟁업체들을 제치고
세계 1위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업계 전략=LG전자가 지난해 마침내 세계 에어컨 톱 메이커로 등극했다. 10년 전 내수 중심의 사업 전략에서 과감히 탈피해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린 결과 그 결실을 맺은 것이다.
LG전자 관계자는 “과거에는 하늘(날씨)만 바라보는 소극적인 사업전략을 구사했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92년 이후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글로벌 차원의 사업을 과감히 전개해 온 것이 주효했다”며 성공비결을 소개했다.
LG전자는 ‘휘센’ 브랜드가 세계시장을 제패한 여세를 몰아 올해도 지속적인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전년보다 무려 25% 증가한 18억달러의 매출을 달성할 계획이다.
또한 지난해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148개국 중 무려 23개국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LG전자는 올해도 지역특성에 맞는 제품 출시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톱 브랜드의 위상을 굳혀나갈 방침이다.
삼성전자도 수출지역을 다변화하고 차별화한 마케팅을 펼친 결과 올들어 에어컨 수출부문에서 전년대비 30% 신장률을 거두는 등 두드러진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과 한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원화하고 가격경쟁이 치열한 저가 중심의 판매구조에서 시스템에어컨 등 고수익이 보장되는 고급제품 중심으로 판매구조를 개편한 것이 적중했다는 게 삼성전자 시스템가전사업부측의 설명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삼성DVM’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고부가 상업용 시스템에어컨 사업에 역량을 쏟아부어 오는 2006년까지 세계 시장을 제패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대우전자는 최근 국내에서 불고 있는 ‘산소 에어컨’ 바람을 해외로 확산시킨다는 전략아래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해외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이미 중동·중남미·유럽 지역 바이어들로부터 문의가 쇄도하고 있어 올해 60만대 수출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만도공조·센추리·캐리어 등 에어컨 전문업체들도 브랜드 인지도를 앞세워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만도공조는 ‘위니아’의 브랜드 파워를 내세워 지난해 10만대를 수출한 데 이어 올해도 30% 증가한 13만대를 해외에 수출할 계획이다. 유럽지역을 주 타깃으로 공략하면서 점차 북미와 중동지역으로 수출지역을 다변화해 나갈 방침이다.
센추리는 산업용 시스템에어컨 전문업체로서 에너지 효율이 높은 흡수식 냉동
기를 앞세워 미국을 중심으로 수출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출 전망=국산 에어컨의 수출 전망은 매우 밝은 편이다. 일본의 세계적인 에어컨 메이커인 마쓰시타가 최근 LG전자와 가정용 에어컨 사업 분야에서 글로벌 협력체제를 구축키로 한 것이 그 단적이 예다.
아쉬울 것이 없어 보이던 마쓰시타가 LG전자와 손을 잡은 것은 향후 시장 경쟁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정용 에어컨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지난해 세계 최대 에어컨메이커로 급부상한 LG전자와의 포괄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는 또한 우리나라 에어컨 업체들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입증한 사례라 하겠다.
지난해 룸에어컨(RAC) 부문에서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최대 수요처로 부상한 것도 국내 에어컨업체들에는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각각 글로벌 경쟁시대에 대비해 중국에 룸에어컨 생산공장을 설립하고 현지 생산·판매·서비스를 일괄처리하는 현지 완결형 사업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중국 본토 공략의 기반을 마련해 놓고 있다.
특히 세계 주요 메이커들의 각축장이자 세계 최대 유망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의 경우 대다수 지역이 우리나라와 날씨가 매우 흡사해 국내 업체들이 에어컨을 판매하는 데 있어 그만큼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국내 에어컨 업체들은 최근 수익성이 낮는 룸에어컨 중심의 사업에서 벗어나 부가가치가 높은 상업용 시스템에어컨 사업에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LG전자·삼성전자 등 에어컨 업체들은 올들어 미국·스페인·이탈리아 등 세계 각지에서 열린 국제 공조기기전시회에 상업용 시스템에어컨을 주력 제품군으로 내세워 수출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 시스템에어컨 시장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반면에 유럽·미주 등 선진시장의 경우 이 시장이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이 부문의 해외 매출 확대를 통해 수익구조를 개선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