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욱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부사장
신경제의 주체로 각광을 받았던 인터넷기업중 당장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기업이 적지 않다. 또한 국내외 할것없이 모든 기업들이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는 돌파구를 찾는 데 혈안이다.
‘과연 순수 인터넷기업은 사라지는 것인가’ ‘벤처캐피털의 투자 행태가 어떻게 바뀌었는가’란 물음에 동시대의 흐름을 진단하자는 취지의 행사가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 레이크타호에서 있었다. 테크놀로지 산업의 리더를 위한 정보 매거진으로 세계적 명성을 가진 레드헤어링이 ‘레드 헤어링 벤처 2001’을 개최, 미국의 벤처캐피털리스트들과 벤처 사업가들에게 교류의 장을 제공했다.
미국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벤처투자에 있어 무엇에 주목하고 있을가. 레드헤어링이 선정한 ‘주목할 10개 회사’들은 뭔가 하나씩은 쥐고 있다. 그것은 바로 기술이다. 남보다 월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술이다. 차별성도 기술이라 할 수 있다. 10개 회사 중 6개가 일종의 ‘도구(tool)’ 사업이다. ‘더 빠르게·더 좋게·더 효율적으로’가 주제이다. B2C나 B2B시장은 아예 없다. 순수한 인터넷사업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희망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그나마 인터넷 회사를 하는 사업자들은 끝까지 안간힘을 쓰지만 벤처캐피털의 평가는 냉정하다.
“가치 평가에 인터넷요소를 고려하지 않는다. 다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면 인터넷을 하나의 채널로 생각할 뿐이다.” 패널로 나선 어느 벤처캐피털리스트의 코멘트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은 “인터넷은 결국 커뮤니케이션 수단일 뿐이다. 시장이 아니다. 그 이상 어떤 대단한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이제 사람들이 기존의 사업모델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행사에서는 또한 클라이너 퍼킨슨즈 커필드 앤 바이어스의 비노드 코슬라라는 파트너가 ‘벤처투자의 예술(The Art of Venture Capital)’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지난 몇 년간은 탐욕과 두려움이 반복되는 시간들이었다. 주가 그래프를 볼 때 산봉우리가 탐욕이요 골짜기가 두려움을 나타낸다”란 흥미로운 말로 청중의 관심을 끌었다. “IT 투자 1% 증가는 일반비용 1.5∼2% 감소를 가져온다”며 IT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신 데이터센터 인프라(New Datacenter Infrastructure), 신 프로그래머블 네트워크(New Programmable Network), 실시간 사업(Real-time Enterprise) 관련 분야를 향후 유망한 사업으로 전망했다. 특히 오직 실시간 사업만이 살아남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실시간 사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소위 시스코 같은 회사가 실시간 사업자다. 시스코에서는 고객이 문의를 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없다. 실시간으로 일이 처리된다. 그렇다면 고객지원센터에 수만명이 앉아 있는 것일까. 아니다. 다른 회사보다 훨씬 적은 인원이다. 다른 회사보다 훨씬 적은 인원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기술 인프라의 힘, 곧 경쟁력이 된다는 말이다.
이 행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였다. 스스로 그것을 ‘예술’이라고 여겼던 것일까. 이제는 기술이 기업 전략의 주축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심오한 기술’적 요소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심오하다’는 것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정도’라는 의미다. 새삼 심오한 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시대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미국의 벤처 투자 경향을 살펴보면 기술의 중요성이 투자 결정의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미국 벤처캐피털리스트는 부실한 회사에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 신생 회사들은 여전히 투자를 유치하고 있지만 좋은 기술을 갖고 있거나 경험 많은 경영진이 있는 경우로 제한된다. 컴퓨터를 이용한 가족용 오락 기술을 개발했던 스티브 펄만이 세운 한 벤처회사는 6700만달러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기술 우위의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명제는 어찌보면 아주 진부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이 바로 벤처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기본 명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해볼 시점인 것 같다. ‘생존을 위한 심오한 기술’이 시대를 사는 우리 벤처들의 명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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