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기우제와 인공강우

◆박광선 논설위원

 봄 가뭄이 극심하다. 전국의 댐과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곳곳에서 밭작물이 말라 비틀어지고 있다. 모내기는 전국적으로 80% 이상 진척돼 최악의 상황은 넘겼으나 물 부족으로 심은 모가 뿌리를 제대로 내리기 어렵다니 참으로 걱정이다.

 메마른 천심을 달래기 위한 기우제라도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에는 기우제를 올리는 모습을 좀체로 보기 힘드나 엣날에는 동서양에서 모두 이뤄졌다.

 고대 그리스에선 제우스의 신목인 떡갈나무 가지를 물에 적셔 기도를 드렸고 로마에선 신상을 태운 배를 테베레강에 띄우며 단비를 염원했다. 인도에선 뱀과 개구리에게 물을 뿌려야 하고 게르만족은 처녀가 발가벗고 물을 뿌려야 비가 온다고 믿었다. 또 비를 지배하는 것이 용이라고 믿었던 중국인들은 토룡(지렁이)을 올려 놓고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가뭄이 들면 나라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삼국시대에는 가뭄이 들면 초가로 거처를 옮겨 왕이 식음을 전폐하면서 하늘에 기원했고 민간에선 산과 강에 제단을 만들고 기우제를 올렸다. 고려 때는 주로 무당이 했으나 가뭄이 심하면 왕이 직접 기우제를 지냈고 조선시대에는 종묘와 삼각산·목멱산(남산) 등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봄 가뭄이 하도 심하다 보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사실 가뭄과 홍수는 매년 되풀이되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하늘만 쳐다봐야 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뭔가 확실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인공강우 기술이다. 필요한 곳에 비를 내리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가뭄이나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인공강우 기술이 실용화된다 해도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서 비를 좍좍 내리게 할 수는 없다. 형성된 구름이 비를 뿌릴 여건으로 성숙하지 않을 때 구름씨를 뿌려 필요한 곳에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다.

 인공강우의 원리는 이렇다. 구름층이 형성되어 있더라도 구름 속에 있는 작은 물방울을 모을 수 있는 구름씨(작은 얼음결정이나 대기중의 먼지)가 적으면 빗방울이 형성되지 않는다. 이럴 때 인위적으로 구름씨(통상적으로 드라이아이스나 얼음의 결정구조와 비슷한 요오드화은을 사용)를 뿌려주게 되면 이들 빙정핵을 중심으로 물방울이 형성되고 이것이 무거워지면 비로 변해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어찌보면 간단하나 구름씨를 뿌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공기의 상승과 하강기류가 요동치고 있어 언제, 어느 시점에 뿌려야 강우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판단하기 쉽지 않고 구름이라고 모두 비를 내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름상태를 면밀히 관찰, 강우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될 때만 구름씨를 뿌리는 데도 성공확률이 높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지난 46년 11월 13일 미국의 구름물리학자인 세퍼와 랭뮤어가 뉴욕 근교 고도4㎞상공에 있는 구름에 1.5㎏의 드라이아이스를 살포, 눈을 오게 하는 실험에 성공하면서부터 본격화됐으니 인공강우에 대한 연구도 어언 반세기를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강우 기술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러시아 등 10여국에 불과하다니 어려운 기술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물론 우리 정부도 해마다 되풀이되는 가뭄과 홍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강우 기술에 높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지난 95년 3월 과기처 특정연구과제로 인공증우 실험연구가 실시됐고 96년5월에는 이상가뭄에 대비한 신기술 개발연구의 일환으로 인공증우 기반기술개발과제가 수행된 적도 있다. 하지만 예산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연구개발은 중단되고 말았다.

 실용화 가능성을 확인하는데 그친 것이다. 지지부진하던 인공강우 기술 개발이 재개된 것은 지난 99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차 한·러 기상협력 공동실무회의에서 러시아측으로부터 인공강우 기술을 이전받기로 합의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연구성과가 발표되지 않은 것을 보면 갈길이 순탄치는 않은 것 같다.

 가뭄과 홍수 문제를 첨단기술로 극복하는 날이 언제가 될지 참으로 궁금하다. 

 ks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