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통신장비업계 `제살깎기`

 “그 회사 실력없습니다. 우리와 제휴합시다.”

 중국 정부가 이달 중으로 자국내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이동전화단말기 제조업 허가(10∼15개)를 낼 예정인 가운데 한중 통신장비업체들이 짝짓기를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업체끼리 서로를 폄훼하며 중국업체 가로채기에 나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최근 CDMA 솔루션 전문업체로 남미지역 업체와 중요한 수출계약을 앞두고 있던 기가텔레콤의 김호영 사장은 기존 일정을 취소하고 중국에 가야만 했다. 중국 난징버드(NanjingBird)와의 CDMA단말기 제휴계약이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중국측에서 갑작스레 ‘재검토 의사’를 전해왔기 때문이다. 국내 중견 단말기제조업체가 난징버드측에 기가텔레콤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다는 것.

 기가텔레콤 한 관계자는 “수개월 동안 다져온 난징버드와의 제휴협상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며 상도의를 깨뜨리는 관련업체 행보를 질타했다.

 현재 한중 단말기 합작전선에 얼굴을 내민 업체들은 줄잡아 20여개. 중국업체로는 대표적인 전자통신장비업체인 거대중화(거룡·대당전신·중흥통신·화위)를 비롯해 난징버드·동방통신·TCL·교홍전신·커지엔·쇼우신 등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성전자·LG전자·현대큐리텔은 물론이고 팬택·텔슨전자·한화/정보통신·스탠더드텔레콤·와이드텔레콤·기가텔레콤 등이 나섰다.

 특히 국내업체들은 CDMA뿐만 아니라 유럽형 이동전화(GSM) 단말기시장 진출 기회까지 엿보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중국 정부가 자국 통신장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외국기업 독자진출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현지기업과의 협력이 중국시장 진출의 전제조건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보다 규모가 있는 중국업체와 손잡는 것이 중국시장 성공요소인 셈이다. 그렇다고해서 합작계약을 눈앞에 둔 관계까지 가로채는 것은 ‘결국엔 제살을 깎아먹게 되는 근시안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