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사업 진출은 어떻게 보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LG전자 입장에선 비메모리(ASIC) 기술개발은 늘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도체 빅딜이후 조심스럽게 수면아래서 해왔던 비메모리 반도체사업을 이번에 수면위로 끌어올려 공식화했다. LG의 대만업체를 통한 ASIC 추진은 삼성과 함께 국내 전자산업을 주도하는 LG가 갖는 상징성 만큼이나 이제 초기인 국내 파운드리 산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왜 진출했나=크게 세가지다. 첫째, 주력사업인 디지털TV의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이상 늦출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LG전자는 미국 자회사인 제니스를 통해 북미 디지털TV전송방송(VSB)에 대한 원천특허를 확보하고 있어 오는 2005년부터 매년 1억달러 이상의 로열티 수입을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TV칩시장에 뛰어들 경우 승산이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LG측은 디지털TV칩의 세계 시장규모를 2005년 6억2000만달러로 추산하고 이 시장의 45%만 차지해도 연간 2억8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둘째, 구조조정으로 핵심사업인 디스플레이사업마저 필립스측과 합작하면서 독립시키게 됨으로써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현재 디스플레이사업을 대신할 만한 뚜렷한 사업이 없는 상황에서 성장성과 관련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비메모리 사업을 전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LG전자는 하이닉스반도체와 합의에 따른 반도체 관련 인력문제가 종결되는 시점을 택해 비메모리사업 분야에 뛰어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품의 안정적인 공급처 확보다. LG는 그동안 시스템용 IC를 국내에서 조달하려 했으나 어느 업체로부터도 안정적으로 원하는 반도체를 조달하기 힘든 형편이다. 아남과 동부는 외국 반도체업체의 파운드리에 주력하고 있고 삼성전자 역시 그동안 시스템의 경쟁사인 데다 반도체 기술 기반도 전혀 다르다. LG는 이들업체와의 제휴를 전혀 생각지 않는다. LG로선 구 LG반도체의 생산시설을 그대로 전해받은 하이닉스반도체와 제휴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이 때문에 LG는 하이닉스와 비메모리반도체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맺기도 했다. 하지만 하이닉스의 기술이 메모리에 치우쳐 있으며 비메모리 기술을 주도한 LG반도체 인력이 대거 떠난 상태다. 따라서 이번에 비메모리 사업을 공식화하면서 대만업체와 손을 잡게 된 것이다.
◇업계 반응=LG전자가 비메모리사업의 진출을 공식화하자 업계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디지털TV 분야의 맞수인 삼성전자가 내심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LG와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LG반도체를 인수합병한 하이닉스반도체는 LG전자가 반도체 생산시설을 갖추지 않는 이상 특별히 부딪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LG가 본격적으로 비메모리사업을 전개하면 결국 LG의 납품물량이 줄어들 수도 있어 이래저래 환영할만은 일은 아니다.
중소 반도체설계 업체들은 LG의 진출에 대해 가장 우려하고 있다. 중소 반도체설계 업체의 한 관계자는 “칩을 만들어 파는 것이 LG전자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중소 팹리스(fabless)들의 입지를 좁힐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중소업체들의 설계기술을 활용, 상호 윈윈할 수 있도록 공동 개발의 기회를 지속적으로 확대한다면 LG의 진출이 그렇게 나쁜일만은 아니다는 반응도 있다.
◇전망=LG전자가 과연 발표대로 반도체 설비를 갖지 않은 채 비메모리 사업을 전개하겠는냐는 것이다. 업계관계자는 LG그룹이 반도체빅딜로 손을 놓았던 반도체사업을 재가동한 것으로 평가하면서 어느 시점을 택해 생산설비도 갖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LG의 고위 관계자들은 아직도 구미공장에 대해 미련을 갖고 있다. 업계에선 LG의 비메모리반도체사업의 추진과 하이닉스의 LCD사업 매각과 관련해 그 접합점인 구미 공장의 매각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구미공장은 시스템 IC는 물론 LG필립스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드라이버IC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닉스에서 자체 운영을 고집하자 아쉬울 게 없는 LG는 이를 포기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련을 남겨 두고 있다. 따라서 LG의 독자적인 설비 마련은 시점이 문제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디지털TV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디지털TV칩에 국한, 판매하는 것이며 반도체사업으로 전면 확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면서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