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빈 토플러 박사가 발표한 용역보고서는 기본적으로 세계적 수준에 오른 한국의 정보화 인프라를 하나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경제의 앞날이 긍정적임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그는 세계적 수준의 정보화 인프라를 구축한 한국에 좇아갈 검증된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한국실정에 맞는 전략적 모형을 새롭게 구상할 것을 충고하고 있다. 특히 사회 각 구성요소의 변화수용은 가장 중요하다고 설파하고 있다. 토플러 박사가 연구용역을 수행한 ‘위기를 넘어서-21세기 한국의 비전’의 주요내용을 요약정리한다.
△세계적인 변혁의 바람
-닷컴기업과 하이테크 산업의 붕괴로 시작된 세계금융시장의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일부 경제학자는 ‘신경제는 종료되었거나 신경제란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나 이는 잘못됐다. 신경제가 종료됐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지난 1800년대 초반 맨체스터 소재 일부 섬유회사가 파산했기 때문에 산업혁명이 1800년대 초반 종료됐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신경제는 종료되지 않았을 뿐더러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수익성과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는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은 이런 나라 중 하나로 확고히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신경제의 미래는 긍정적이다. 지난해 8월 골드만삭스는 인터넷의 미래를 전기의 도래와 비교했다. 전기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의 도래에서 가져오는 대부분의 혜택은 이윤증가의 형태로 기업에 귀속되기 보다는 가격하락의 형태로 소비자에게 귀속되거나 가격대비 임금의 상승으로 노동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한국의 경우 역시 신경제에 따른 혜택이 이익급증과 주가급등이라기 보다는 고용의 증가, 소비자가격 하락 등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날 것이다.
-방송보도와 달리 e커머스는 죽지 않았으며 향후 ‘커머스+E’로 발전할 것이다. 닷컴기업의 몰락과 함께 파산을 거듭한 e커머스업체들은 사실 ‘커머스+ E’ 업체가 됨으로써 계속될 것이다. 미국에서 ‘커머스+E’ 업체는 온라인 화훼업체, 온라인 보석상, 장신구 판매업자 등 서비스업체를 포함한다.
B2B의 경우 주창자들이 주장하는 것보다 발전속도가 훨씬 더딘 것은 사실이지만 잠재적인 비용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에 경쟁적인 환경에서는 결국 성공할 것이다. 이것은 e커머스가 아닌 ‘커머스+E’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정부는 지식기반 비즈니스 및 서비스를 차별하는 세금 및 규제 정책을 체계적으로 재점검하고 폐지함으로써 최소한 ‘커머스+E’로의 이행을 장려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
△제3의 물결-메이드 인 코리아
-제3의 물결경제는 단지 주식가격이나 디지털화 또는 온라인거래의 문제가 아니다. 신경제에서는 새로운 법칙이 적용된다. 정보가 돈이 되고 또 돈은 곧바로 정보화가 된다. 제3의 물결경제는 실질적으로 산업사회에서 국가와 기업들에 성공을 갖고 왔던 원칙과 관습·관행들에 있어 많은 부분에서 상반된다. 산업사회에서 통용됐던 낡은 가정(if)들은 이제는 변해야 한다. 예를들어 디지털혁명은 보다 크고 긴 여정의 첫번째 단계다.
첫번째 단계로서 정보기술은 생물공학을 혁신시켰고 다음 단계에서는 생물공학이 정보기술의 혁신을 주도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우리 경제 전반에 혁명적 변화를 갖고 올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경제에서 뿐만 아니라 인류역사에서 전환점이 될 것이다.
디지털을 바탕으로 한 모든 개혁은 경쟁을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만약 경제학자가 신경제는 끝났다고 할지라도 계속될 것이다. 한국은 이에 대해 보다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산업사회에서 한국은 성공했다. 영국과 미국이 축적한 산업경제의 기본원칙들은 한국에서 충분히 훌륭하게 적용됐다. 정보화에서는 다르다. 정보사회에서 새로운 부의 창출 메커니즘이 아직은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한국이 따를 만한 검증된 모형은 없다.
한국의 미래는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좋은 소식은 이미 보다 진보적인 경제체제로의 과감한 첫걸음을 한국이 내디뎠다는 사실이다.
△지식으로의 접속
-한국의 정보통신기술은 여타 선진국과 비교해 2∼3년 정도 뒤처져 있지만 훌륭한 하부구조를 지니고 있다. 새로운 하부구조의 구축을 위한 첫발을 대딛은 한국은 이 거대한 물리적 하부구조를 발명과 재발명을 통해 한국경제 전체를 위해 유익하게 사용해야 한다. 결코 일본이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된다. 예를들어 일본은 제2의 물결에서 제3의 물결경제로 이전해 가는 도중에 멈춰버렸다.
-성공의 주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제3의 물결 하부구조 시설들이 모든 비즈니스와 사회 각 분야에서 얼마나 잘 활용되는 것이냐에 달려있다. 이제는 실리콘밸리를 모방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계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잘 개발된 정보하부구조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그 하부구조를 몇몇 특정산업 또는 지역에 집중하기 보다는 사회전반에 걸쳐 유익하면서도 혁신적으로 사용하는 경쟁력을 국가가 갖춰야 한다.
-사이버경제기반을 신속하게 확산시키고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이 중요하다. 인터넷과 새로운 통신서비스의 공공활용을 광범위하게 확산시키는 것 역시 국익을 창출하는 지름길이며 이 점에서 한국정부의 정책적 역량은 중요하다. 특히 규제기구의 독립성을 제고하고 공급자간의 상호연관성을 촉진시켜 가입자망의 개방과 경쟁을 촉진시켜야 한다. 특히 전화사업자·케이블TV사업자·위성회사간의 협력을 저해하는 사업영역을 격리시키고 규제장벽을 철폐해야 한다.
△기회의 창
-한국의 새로운 정보통신기반은 한국기업이 향후 수십년간 확장일로에 있는 해외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가장 큰 기회 중 하나는 건강분야로 정보통신과 생명공학이라는 두가지의 강력한 추진력은 서로 융합돼 폭발적인 성장을 창조할 것이다. 한국은 다가올 정보기술과 서비스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수출국가이자 사용국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생물학 자체는 컴퓨터와 연산능력을 변혁시킬 수 있으며 이는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을 제고할 것이다.
정보기술·생물공학·재료공학·나노기술의 통합은 각 영역에 걸쳐 혁신을 촉진할 것이며 한국은 반드시 이 모든 분야의 발전대열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다음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생물공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식교역의 자본화
-한국은 수출전략의 방향을 전환하고 전체경제하에서 수출의 역할을 대폭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고부가가치 수출품목으로의 전환 및 무형자산의 수출은 확대시켜야 한다. 소비위축을 불러왔던 일본의 경제정책을 예로 할 때 한국은 더욱 내실있는 국내시장을 개발함으로써 정치적·기술적 혼란들로 인해 발생하는 경기침체와 예측할 수 없는 충격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지식기반경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지식의 활용뿐만 아니라 새로운 고부가가치 지식의 생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개발이 필요하며 선진기술을 조기에 채택해야 한다.
-새로운 사이버인프라와 인터넷의 확산으로 대기업에 밀려있던 한국의 중소기업은 과거 대기업만이 지니고 있던 장점을 다수 보유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융통성이 있고 신속히 변화할 수 있으며 또 보다 적은 비용으로 개별고객에게 맞춤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중소기업이 제3의 물결에 합류한다면 한국은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지능기업을 향해
-신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사회건설이 선행돼야 한다. 오늘날 전세계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다양한 제도의 창조와 재창조없이는 산업사회의 경제를 탈피해 21세기 지식기반경제로 도약할 수가 없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산업화과정에서 성공한 기업들은 한결같이 몸집이 크고 본사에 권한이 집중돼 있으며 관료주의적인 피라미드형태의 조직구조와 수직적 통합을 이루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경제하에서의 많은 기업들은 규모가 작아지고 기업경영에서도 자율화를 앞세운 분권화양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수직적인 통합 역시 해체하고 있다.
다만 기업들은 보다 신속한 의사소통을 위해 IT시스템을 활용함으로써 실시간 수평·수직적 의사소통을 원활히 수행하고 있다.
-지식기반경제가 지향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피라미드형 거대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는 경제에서 벗어나 시장과 기술·금융에 있어 급격하고도 경쟁적인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는 기업간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경제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이 가진 견실한 정보인프라는 신경제로 이행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과거 산업화경제에서 재벌이 성공했던 방식이나 조직형태·기업문화 등은 오늘날의 지식기반경제에서는 그 경쟁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최근 지식기반경제에 진입한 이후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재벌기업들은 국가경쟁력 하락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만일 한국기업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한국에는 저수익의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저임금의 직종을 양산하는 공기업만이 생존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이를 명심해야 한다.
△미래는 사람이다
-지식이 신경제를 이끄는 중심축이라는 사실이 모든 사람들이 컴퓨터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래에는 신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직업이 등장할 것이다. 문제는 새로운 직업의 홍수속에서 오래된 직업이 사라지게 됨으로써 사회적으로는 변화를 위한 상당한 혼란과 고통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일의 본질적 의미가 변화하는 것처럼 신경제하에서는 실업의 의미도 변화하게 된다. 지식기반경제하에서는 이론적으로 500만개의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지만 그 중 100만개의 일자리는 직업에 필요한 기술수준이 높기 때문에 실업자들이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실업의 의미가 양적인 것에서 질적인 것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에 대한 대안은 재교육이다.
-신경제는 중요한 사회제도의 하나인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기업이 변해야 하는 것처럼 노동조합도 변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기본적인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기업과 국가처럼 지식이 기초가 되는 새로운 경제체제로의 이행을 지지하느냐, 아니면 그러한 변화에 저항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만약 그들이 신경제체제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한다면 그렇게 변화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미래의 인력은 집단적이 아닌 개별적으로 양성된다는 점이다. 이를 전제한다면 기업과 정부는 지식기반사회로의 이행과정에서 노조가 직면한 어려움을 인식하고 가능하다면 이들을 약화시키거나 무력화시킬 것이 아니라 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른 모든 산업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한국내의 교육체계는 반복작업하의 굴뚝경제체제에 기초한 형태로 발전되고 학생들을 교육시켜 왔다. 하지만 제3의 물결에서의 교육방식과 내용은 이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이 지식기반경제로의 이행을 위해서는 교육기관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21세기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어느 곳, 어느 장소에서나 혁신적이고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배양을 통해 그러한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학생들을 준비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의 학교들은 어린 학생들이 직업에 대해서건 그밖에 대해서건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에서 보다 큰 다양성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
-미래에 펼쳐질 커다란 변화에 대해 한국정부는 권력을 차지한 당파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그 자신이 험난한 변화의 과정에서 국가 전반에 걸친 막대하고도 새로운 책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는가가 한국이 성공적인 제2의 물결인 산업시대 국가로부터 도약해 보다 성공적인 제3의 물결 국가로 이행하는가를 결정지을 핵심조건이 될 것이다.
<조시룡기자 sr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