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정상회담을 계기로 지난 1년 동안 정보기술(IT)분야에서 남북교류는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루어냈다. 특히 남북이 공동으로 북한내 정보통신기술 인력양성을 위한 대학(원) 설립을 비롯, 남북 IT연구기관간 공동 연구개발, IT관련 도서교류 합의 등의 성과가 잇따랐다. 남북간 IT교류를 위해 표준화가 필수적인 컴퓨터 자판·한글 자모순서 같은 정보처리 부문에서 남북 공동안을 도출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연구개발, 인력양성, 정보처리체계 표준화 부문 등에서의 주요 교류협력 성과를 간추렸다.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 설립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이 공동으로 평양에 IT분야 대학을 세우기로 합의했다.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이사장 곽선희 소망교회 목사)은 지난 3월 북한 교육성과 평양에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을 설립, 향후 50년간 공동으로 운영키로 합의했다. 이는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직후 남측 통일부 장관이 북측에 남북이 협력해 정보과학기술분야 대학을 설립하는 문제를 제의한 이후 얻어진 성과다.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은 지난 5일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 건립·운영사업’에 대해 통일부로터 남북 협력사업자와 협력사업 승인을 동시에 받았다.
400억원을 투자해 건립하는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은 오는 2002년 9월 박사원(대학원) 과정을 시작으로 개설하고, 정보과학학부·생명과학학부·공학부·경영정보학부에서 500명 정도의 학생을 받아 북한의 정보통신 인력을 육성하게 된다. 또 2003년 4월께 학부과정을 개설하고, 향후 남한 IT분야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한 지산복합단지도 이 대학에 조성된다.
이를 위해 7월중 1단계 사업으로 행정동·학사동·실험동 등이 본격 착공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북측은 평양 시내에 100만㎡ 규모의 부지를 제공하고, 대학시설의 설계 및 시공뿐 아니라 운영을 재단과 북측이 공동으로 하기로 했다.
또 북한측은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의 초대 총장에 옌볜과학기술대학의 김진경 현 총장(66)을 임명했다. 옌볜과학기술대학은 지난 92년 재미교포들이 주축이 돼 중국 옌볜 조선족 자치주에 설립된 해외 첫 한민족 대학이다.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의 학사운영은 김 총장이 전담하며, 사상교육 등 다른 부문은 북한측에서 맡게 된다. 강의는 한국어와 영어로 진행된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김진경 총장은 “평양에 IT대학을 설립키로 한 것은 민족교육을 남과 북이 함께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며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의 교수진을 남한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석학들로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멀지 않아 남한 교수가 북한 학생과 수업하는 모습을 보게 될 전망이다.
◇포항공대-평양정보쎈터 공동연구
포항공과대학교와 북한의 대표적인 IT 연구개발기관인 평양정보쎈터는 IT 및 과학기술분야에서 실질적이고 본격적인 교류·협력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남한의 대학이 북한의 연구기관과 IT 및 과학기술 연구개발 분야에서 상호 협력키로 한 것은 포항공과대가 사상 처음이다.
합의서는 지난 5월 9일 중국 단둥 하나프로그람쎈터에서 박찬모 포항공과대학교 대학원장과 최주식 평양정보쎈터 총사장간에 전격 체결됐다.
합의서는 두 기관이 중국 단둥과 평양에서 공동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연구과제는 우선적으로 가상현실(Virtual Reality) 분야로 한정하되 점차 다른 분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포항공과대학교는 또 남한의 하나비즈와 평양정보쎈터가 지난 5월 단둥에 공동으로 설립한 하나프로그람쎈터에서 남북한 IT인력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의 공동개발과 고급 프로그램에 대한 강습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평양정보쎈터는 북한에서 조선콤퓨터쎈터와 쌍벽을 이루는 IT 연구개발기관으로 북한의 조선글 표준 워드프로세서인 ‘창덕’을 개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운용체계에서 조선글 입출력처리를 해주는 다국어처리 소프트웨어 ‘단군’도 평양정보쎈터의 작품이다. 현재 180여명의 연구원이 우리글 처리 및 컴퓨터 보조설계, 일본어 자동기계번역, 문자인식, 서체 등 다수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박찬모 원장은 “북한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기초이론과 기반기술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나 이를 상업화할 수 있는 경험과 기술이 절대 부족하다”고 말하고 “북한의 기반기술과 남한의 상업화기술이 접목될 때 국제적인 경쟁력을 갗춘 소프트웨어 제품이 탄생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남북 첫 IT도서 교류
북한의 평양정보쎈터는 지난 4월 IT분야 대북 전문가들의 모임인 통일IT포럼(회장 박찬모)을 통해 남한에 컴퓨터·네트워크·프로그래밍·멀티미디어·서체·코드 분야에 걸쳐 200여종의 IT 전문도서 기증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IT분야 도서교류는 도서목록을 통해 북한의 IT산업현황과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고 북한에 남한 IT기술 추세를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는데다, 남북한 IT전문가 사이에서 나타나는 기술적·문화적 이질감의 해소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도서교류는 특히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한글과 조선글 간에 나타나는 상이한 문법체계 및 정보처리 분야에서의 간극을 메워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게다가 현재 북한의 IT기관 관계자나 이용자들은 한글(조선글)로 된 전문도서가 부족해 대부분 일본어판이나 영문판 서적을 구입해 현업에 활용하는 실정이어서 남한의 IT서적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 도서 대부분은 남한에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컴퓨터 기반 관련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전문서적이 망라돼 있다. 북한이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음성인식과 반도체 회로관련 및 멀티미티어 콘텐츠 분야 서적도 다수 포함돼 있다. 발간연도는 일부는 80년대나 90년대 초반의 것도 있지만 대다수는 최근의 것이다. 이는 IT에 대한 북한의 관심이 자체 기술 수준과 별개로 남한의 관심사와 비슷하거나 최소한 세계 IT 기술흐름에 뒤처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통일IT포럼은 6·15 정상회담 1주년을 기념해 이달 중순부터 IT업계·출판업계·전문가·일반인 등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도서모집 캠페인을 벌여 1차로 1000여권의 도서를 모집, 상반기중 북한측에 전달할 계획이다. 이 캠페인은 1계좌(도서 10권 또는 이에 상응하는 금품) 단위로 참가할 수 있다.
전달된 도서는 1차적으로 평양정보쎈터 소속 180여명의 기술자에게 보내져 소프트웨어 개발 등 현업에 활용되고, 일부는 인민대학습당 주요 기관과 김일성종합대학 및 김책공업대학 등에도 기증된다.
◇컴퓨터 자판배열·자모순서·IT용어 남북 공동안
지난 2월 22∼24일 중국 옌지에서 열린 ‘제5차 코리안 컴퓨터처리 국제회의(ICCKL)’에서 남북한 정보처리·국어학자 및 전문가들은 컴퓨터 자판배열과 한글 자모순서, IT용어 등에 관한 남북 공동안을 마련했다.
이번 성과는 남북간에 이질화돼 있던 우리글의 정보처리체계를 표준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로 평가되고 있다. 진용옥 국어정보학회장은 “정보화의 기초가 되는 국어정보처리 분야에서 향후 남북통일을 위한 공동안을 도출한 것은 큰 의의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글의 명칭을 두고 남쪽은 ‘한글’로, 북쪽에서는 ‘조선글’로 각각 불려왔는데, 이번 회의에서 남북은 국제표준화기구(ISO) 등에 등록하기 위한 글자의 명칭은 ‘정음(JEONGEUM)’으로 바꾸기로 합의했다. 자판 부문의 경우 지난 96년 합의한 2벌식 자판 공동안에서 옛글자 4자(△, ㆁ, ㆆ, ·)를 제외한 자판안을 공동안으로 합의하고, 이를 임상실험의 대상으로 정했다. 다만 옛글자 4자를 포함한 자판안도 임상실험키로 하고 이에 대한 사용자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또 IT용어의 남북 표준화를 위해 ISO가 제정한 표준용어 ISO2382에 멀티미디어·인공지능(34편까지) 등의 분야를 포함시켜 올 연말까지 ‘국제표준정보기술용어사전’ 2판을 출간키로 했다. 북측 대표인 리수락 교육성 프로그람교육쎈터 소장은 “북남 학회간에 견해를 일치시켜 올해 안으로 내용이 풍부한 전문용어사전을 출판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에 대해 상당히 만족한다”고 말했다.
서체 부문의 경우, 남·북·중의 서체개발 자료를 서로 교환함과 동시에 정음서체 전시회 개최와 정음서체 용어사전 편찬, 발행을 공동으로 수행키로 했다. 논란이 많았던 로마자 표기, 즉 ISO11941 전자법 부문에서는 모음자 표기와 자음자 표기 ‘ㄴ, ㅁ, ㅇ, ㄹ, ㅅ, ㅆ, ㅈ, ㅊ, ㅎ’에서는 차이가 없음을 확인하고, 자음 중 차이가 있는 ‘ㄱ, ㄲ, ㅋ, ㄷ, ㄸ, ㅌ, ㅂ, ㅃ, ㅍ, ㅉ’ 등에 대해서는 올해 말까지 공동안을 마련키로 했다.
<글=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사진=정동수기자 ds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