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화 벤처연구소 소장
대기업이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벤처와 기존사업의 연관효과를 통해 본업의 경쟁력 강화, 시장확대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대기업이 e비즈니스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벤처기업과 상호보완 효과를 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둘째는 미래 성장산업에 진출하기 위한 옵션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술의 변화속도가 빠르고 시장 불확실성이 높은 경우 다양한 옵션의 확보는 중요한 전략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벤처투자 후 기업공개(IPO) 또는 인수합병(M&A)을 통한 자본이득(capital gain)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벤처기업의 입장에서도 성장과정에서 대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위험분산 및 성장 기회를 갖는 효과가 있다. 또 대기업으로부터의 투자유치는 창업자나 초기 투자자의 회수수단(exit)이 되고 있다.
이러한 대기업의 벤처투자는 장기적인 협력관계가 활성화될 때 그 효과가 커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인큐베이션 역량강화를 통해 초기 벤처기업의 성공률을 높이고 M&A 시장의 확대로 두 주체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야 한다. 또 분사 및 사내벤처 를 활성화해 유능한 인력의 벤처이동을 줄이고 대기업내에 벤처의 특성을 살려 신사업 추진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대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보완적 관계 형성, 적극적으로 벤처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하며 지식·정보·기술의 공유, 표준화의 주도권 확보, 인적자원 등 분야에서 대기업의 아웃소싱을 확대해 가치사슬의 네트워크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들 조건의 저변에는 벤처투자에 대한 장기적 접근, 교섭력의 균형과 신뢰관계 형성 등이 필수적으로 깔려 있어야 한다.
최근 대기업의 벤처투자는 코스닥 침체와 함께 투자회수의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위축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대기업들은 벤처투자의 목적을 자본이득보다는 전략적 목적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강조해왔다. 그렇다면 장기투자를 지향하는 대기업 투자가 위축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코스닥 침체가 장기적일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과 e비즈니스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벤처 인큐베이팅 역량의 한계, 본업과 미약한 산업 연관효과 등으로 성공사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
인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발전하려면 대기업과의 협력관계 증진이 필요하다. 대기업과 벤처기업간 협력관계의 강화를 위해서는 상호간 전략적 목표와 방향성을 공유해야 한다. 전략적 목표는 기술모니터링 및 획득, 기존사업의 수요 활성화, 기존사업의 기술역량강화, 상품 및 서비스군의 다양화 등이다. 오프라인 대기업과 온라인 벤처기업간 협력을 통한 신사업 창출을 위한 전략적 제휴도 가능하다.
대기업은 투자와 함께 벤처의 성장을 지원하는 인큐베이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시장에서 유망한 벤처기업을 발굴하기가 어렵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창업 초기단계의 벤처기업에 투자해 지원·육성함으로써 성공확률을 높여야 한다.
대기업의 해외 마케팅 노하우를 활용한 수출확대, 해외 직접투자 등에서 협력이 필수적이다. 최근에는 벤처기업의 미국, 일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동반관계형 진출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벤처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대기업과의 제휴는 초기 시장진입의 위험과 비용을 절감시켜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 경우 대기업이 벤처기업과 같은 유연성과 신속성을 가지고 협력하는 것이 관건이다. 협력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대기업 벤처투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해소해야 한다. 사회일반에는 여전히 과거 재벌기업의 성장과정에서 보여준 비관련 다각화를 통한 방만한 사업구조가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이러한 비판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 대기업은 벤처투자의 전략적 방향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 장기적 시각에서 투자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단기적 회수에 치중하려다 보면 머니 게임의 양상을 띠게 돼 기업의 본질가치 향상보다 가치 부풀리기의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벤처기업과 상생관계의 구축에도 지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의 벤처투자는 원칙과 전문 인큐베이팅 역량을 기반으로 장기투자 자금으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코스닥 시장의 침체는 대기업 벤처투자의 위축을 가져오고 있지만 반면에 협력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측면도 있다. 인터넷 기업의 독자적 수익모델에 대한 비관적 견해가 높아짐에 따라 오프라인 기업과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신생 벤처기업과 대기업의 협업을 통해 기업가치의 동반상승을 도모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또 코스닥 시장이 과열돼 있을 때는 벤처기업들이 자금조달이 가능했기 때문에 자본조달을 목적으로 한 양자간 제휴는 고려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오프라인 기업과의 제휴를 통한 사업모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자금력이 있고 상호보완적 관계 형성이 가능한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제휴를 통해 새로운 발전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