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최후의 13일 -모리모토 데츠로 씀 -양억관 옮김 -푸른숲 펴냄
“그러나 나는 파리매보다 등에가 되고 싶었다. 아니, 지금도 나는 자신을 성질은 온순하고 덩치가 커서 둔한 말 등에 달라붙은 등에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아테네라는 둔한 말을 늘 깨어 있게 하기 위해 등에 달라붙어 있는 등에라고. 실제로 법정에서 나는 그렇게 선언했다. 그렇게 모든 사람을 비판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사형수의 몸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법정에서 이런 말도 했다. 아테네는 소크라테스라는 등에를 필요로 하고 있음에도 배심원들은 갑자기 놀란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화를 내면서 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고. 나를 죽인 다음에 기분좋게 다시 잠들려 하고 있다고.”
메모; 죽어 가는 사회란 의식이 잠들어 가는 사회를 말한다. 부패와 타락, 멸망으로 인도하는 깊은 ‘의식의 잠’ 속에 빠져 들어가 잠을 깨우려드는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듣고도 귀를 막아버린다. 결코 깨우는 소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어느 시대든 깨어 있는 자는 한둘 있기 마련이나, 불행한 것은 그러한 자들의 존재가치를 인정해주고 귀 기울여주는 이들이 드물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설사 깨어 있다 하더라도 배척과 소외의 대상이 되기 않기 위해 제 목소리를 접고 적당히 타협해 온 이들 또한 적지 않았다. 그래도 ‘생존’은 무엇보다 우선돼야 했으므로.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언도받을 법정에서 당당히 말한다. 자신은 아테네라는 둔한 말을 늘 깨어 있게 하기 위해 등에 달라 붙어 있는 등에라고, 아테네는 소크라테스라는 등에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오늘날, 우리의 직장과 지역사회는 어떤가. 아니 우리 각자 자신은 어떠한가. 천근 만근 눌러오는 눈꺼풀이 너무 무겁기만 해 차라리 저 끌어당기는 깊은 잠 속에 몸을 맡기고 싶어하지는 않는지. 우리들 자신을 깨우고 우리들 삶의 토대를 깨우는 ‘등에’ 같은 존재들이 아쉽다. 그리고 그러한 ‘등에’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열린 귀’도.
억지로라도 눈을 부비며 일어나려는 의지만이라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우리에게 소망은 있기에, 그 소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소크라테스와 같은 이 시대 ‘등에’들의 외침이 더욱 듣고 싶은 건 비단 몇몇 사람들만의 바람은 아닐 듯하다.
<양혜경기자 hk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