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전화단말기의 전자파인체흡수율(SAR)에 대한 정부규제가 표면화하면서 전파 및 전자파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흔히 전자파는 전자기기나 장치, 전자장을 가진 구조물로부터 발산돼 나오는 유해파장이라는 생체문제의 접근이 일반화돼있지만 사실은 안테나, 마이크로 및 밀리미터파, 주파수(RF) 회로 등 무선통신 전반을 관장하는 통신기반기술로서의 의미가 훨씬 크다.
똑같은 통신분야에 적용되더라도 전자공학이 응용부문과 실용화쪽에 강세를 보이고 있다면 전파통신 및 전자파학은 통신의 기초를 이루는 학문으로 이해될 수 있다.
국내 전파통신 관련 학문 흐름의 본산은 한국전자파학회(http://www.kees.or.kr)라 할 수 있다.
학회의 6대 회장을 맡고 있는 박동철 교수(충남대 전파공학과)는 “전파통신의 학술적 의미가 축소되긴 했지만 여전히 무선통신의 밑바탕을 이루는 학문으로 그 중요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며 “학회 규모가 최근 2200여명으로 늘어난 것도 이러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동철 교수는 학술 측면에서 우리나라 전파통신 분야의 원로로 연세대 박한규 교수(기계전자공학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나정웅 교수를 꼽았다. 박 교수와 나 교수는 각각 전자공학과 고주파공학을 전공하고 한국내 이동전화의 성장신화와 함께 전파통신분야의 학술적 골격 및 산업계 적용이론을 개척해온 공로를 널리 인정받고 있다.
지난 92년 창설된 한국전자파학회의 역대회장들도 전파통신학계 내에 학술적 기틀을 다진 인물들로 손꼽힌다. 초대회장을 맡았던 한양대 이중근 교수(전자컴퓨터공학부)를 비롯해 2, 3대 회장을 역임했던 동국대 윤현보 교수(전자전기공학부)도 전파통신학계는 물론 정보통신학계, 업계 전반에 걸쳐 학문적 명성을 얻고 있다.
특히 윤현보 교수는 지난해부터 한국전파진흥협회와 전자신문사가 공동으로 제정한 전파신기술대상의 심사위원장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전파통신 관련 고급기술 이론을 현업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그 성과를 업계가 사업속에서 풀어갈 수 있도록 이론과 실용 양방향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한국전자파학회의 4대와 5대 회장을 각각 역임한 정낙삼 박사(한남대 정보통신공학과 객원교수)와 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ICU) 이혁재 교수도 전파통신학계의 중심학맥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 전파통신 관련 학문의 핵심적 흐름은 ‘전파와 반도체의 결합’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 기저에는 산업 기술수요를 반영하고 있지만 학문 자체적으로도 통신쪽의 이론적 요구를 적극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무선통신에 널리 활용되는 통신증폭기, 발진기, 필터, 듀플렉서, 안테나 등의 성능개선 및 진화가 곧 전파와 반도체의 기술결합 연구성과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과정에서 과학기술부와 과학재단이 공동으로 동국대에 설립한 밀리메타파연구센터(MINT:Millimeter-wave INnovation Technology research center)라는 결실도 나왔다. MINT를 이끌고 있는 두 주역이 바로 한국전자파학회 박동철 회장과 동국대 전자공학과 이진구 교수(전자전기공학부)다.
박 교수는 전파와 반도체의 결합부문에서 전파를 전담하는 2팀을 총괄하고 있고 이진구 교수는 MINT 소장직과 함께 반도체 분야의 1팀을 총괄해 이끌고 있다.
이곳 MINT에도 국내의 저명한 전파통신 관련 학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참가 학자들 중 광운대 이종철 교수(전자공학부)는 박동철 교수와 함께 최근 나노기술(NT)의 핵심분야로 손꼽히는 미세전자기계가공시스템(MEMS:Micro Electronic Machining System) 연구를 진행중이다.
아울러 서강대 윤상원 교수(공학부), 서울대 남상욱 교수(전파공학연구실), 아주대 이해형 교수(전자공학부), 한양대 김형동 교수(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인천대 구경헌 교수(전자공학과) 등 소장파학자들이 의욕적으로 MINT의 연구개발 및 국내 전파통신 학술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한국전자파학회는 최근 몇 년 사이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해외 학술단체와의 연대활동에도 주력하고 있다. 일본 전파 및 전자통신학회와 공동으로 ‘KJJC(Korea-Japan Joint Conference) on EMC/AP/EMT’를 구성해 올해 처음으로 서울에서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며, 한·일 마이크로웨이브 워크숍(KJMW)도 만들어 내년 일본에서 첫 행사를 열 계획이다. KJJC에는 도쿄농경대 니타 교수가, KJMW에는 도호쿠대 미즈노 교수가 현지 카운트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또 아시아·태평양지역 30여개국의 전파통신학자 및 정부관계자들이 참석하는아·태마이크로웨이브콘퍼런스(APMC)를 오는 2003년 서울에서 개최할 예정으로 준비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APMC 2003서울’ 행사 유치 및 준비위원장은 ICU 이혁재 교수가 맡아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전파통신학계의 연구개발은 공공과 민간부문 등 두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공공부문에 있어 군무기체계 국산화 프로젝트와 맞물려 국방과학연구소와 전파통신학자들의 공동연구가 추진되고 있다. 이들의 주요 개발분야는 군무기자동화 관련 무선소자와 무선시스템 등이다. 군무기 자동화를 비롯해 국산화 촉진, 운용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이 국내 전파통신기술이론의 접목을 통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현대인의 필수 통신수단이 돼버린 이동전화와 각 무선기지국의 전자파 및 SAR 측정 등도 특정 민간기관에 맡길 것이 아니라 공익차원에서 진행돼야 할 공공과제에 속한다. 전자파측정 및 관련 국제표준화활동이 전파통신학계를 비롯해 정부, 관련업계, 이용자단체 등이 모두 참여해 수행하는 공공사업의 성격을 띠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민간부문에서는 차세대이동통신(IMT2000)과 관련, 앞으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능동모듈, 수동모듈, 안테나 등의 연구가 최근들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도 IMT2000과 관련해서는 기술표준, 서비스방식 등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많기 때문에 전파통신 관련 연구개발 수요가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MINT를 중심으로 20여명의 학자가 60㎓ 대역의 무선랜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다.
지난 92, 93년 PCS를 비롯한 이동전화가 각광받으면서 전파통신 및 전자파분야는 학문측면에서도 주목기 시작했다. 이때 정보통신부도 전국 대학에 전파통신 관련 학과 설치시 재정지원을 하는 등 정책적으로 이 분야 인력양성을 추진하게 됐으며 충남대·광운대 등 몇몇 대학이 선도적으로 관련학과를 설치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출발선에 일찍 섰던 대학들이 지금도 전파통신 관련 연구 및 개발활동에서만큼은 다른 대학보다 앞서 달리고 있다. 특히 광운대와 충남대의 경우 전파통신연구 맨파워에 강한 대학들로 꼽힌다.
광운대의 경우 8명의 전파 전공교수들이 연구진과 함께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충남대에도 전파통신 분야에만 6명의 교수진이 포진해 있다. 이밖에 서울대·연세대·한양대·경희대 등에는 두세명의 전파통신 분야 전공교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전파통신학계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서울·수도권의 대학들이 전파·전자파 학술분야에 약한 면모를 보이고 있어 전자·통신쪽 학문경향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며 “인기학문과 비인기학문 분야의 현실을 나타내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전했다.
말그대로 10년전 독자적 학문으로 자리를 잡아나가는가 했던 전파통신 분야는 최근 학과통폐합 및 학부제 도입에 따라 ‘부수적 학문’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 전파통신 및 전파학과는 정보통신학부 또는 전자공학부 내 일부 학문분야로 분류되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학계 또 다른 관계자는 “50대 이상의 교수가 전파통신의 본류를 공부했다는 주력부대인 셈인데 그 이후는 암울하기까지하다”며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지망생이 한두명밖에 없을 정도여서 관심밖의 학문이 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모든 이론, 학문적 성과 쌓기에 기초가 튼튼해야 하듯 전파 관련 학문에 대한 정책·학술적 관심이 모아지지 않는다면 실상 무선통신에 필요한 기초학문은 대부분 외국이론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